Download as pdf or txt
Download as pdf or txt
You are on page 1of 10

특집 | 팔레스타인에서 평화의 미래를 묻다

이스라엘은 진정 전쟁을 원하는가?

이강근_이스라엘한인회 회장

한 국 사회에서 이스라엘은 상이한 두 가지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고, 또 그


렇게 존재한다. 이스라엘은 21세기 가장 경쟁력 있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 경제를 쥐고 흔드는 나라, 탈무드를 갖고 있는 지혜의 민
족. 하지만 중동지역에서 분쟁만 발생하면 이 모든 이미지를 뒤로하고 어린이
들이 뛰어노는 놀이터나 환자들이 치료 받는 병원, 심지어 아이들이 대거 몰려
있는 학교까지도 미사일 폭격을 자행하는 잔인한 전쟁광의 나라. 이처럼 두 가
지 모습으로 이스라엘은 인식된다. 나로서도 의아하다. 어떻게 이처럼 대비되
는 두 이미지와 특징을 함께 지닌 나라가 가능할까?

이스라엘의 출현과 중동 분쟁
중동 분쟁의 촉발은 이스라엘에서 시작되었다. 이스라엘 건국 이전에는 중동 분쟁
이란 것은 없었다. 유럽 열강들의 중동식민지 쟁탈전만이 판을 쳤을 뿐이었다. 유럽
의 중동식민지 시대가 막을 내릴 때 쯤, 중동지역에서는 신생 독립국가들이 하나 둘
탄생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과거의 강력한 이슬람주의를 지향하는 이슬람 민
족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이 이슬람 민족주의에 불을 지핀 것이 바로 이스라엘
의 출현이다. 1880년대 말부터 팔레스타인 땅에 몰려들기 시작한 유대인들은 끝내

42 특집 | 팔레스타인에서 평화의 미래를 묻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무슬림 형제들을 몰아냈다. 이때 이 지역에 둥지를 튼 이스라
엘은 곧 이슬람 국가들에게는 공동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이슬람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총칼을 겨누는 일을 위해 함께 동참했다.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한 1948년 5월 14일이 지나자마자 다음날 제1차 중동
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 주변의 모든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대항에 전
쟁을 일으켰다. 이스라엘이 독립전쟁이라고 부르는 이 전쟁은 지금까지 지속되
고 있는 중동전쟁의 시작이었다.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에 이어, 1953년 수에즈
전쟁, 1967년 6일전쟁, 1973년 대속죄일전쟁, 1982년 레바논전쟁 그리고 1992년
과 2003년의 이라크전쟁, 2006년 제2차 레바논전쟁 등 지금까지 중동에서는 크
고 작은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국제 정치 사회에 돌고 있는 얘기가 있는데,“위
기가 발생할 때마다 이스라엘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특히 중동에서는 거의 모두가 이스라엘과 관련을 맺고 있다. 2001년 미국 뉴욕
에서 발생한 9·11테러에서도 알카에다는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외쳤다.

이스라엘, 전쟁의 귀재에서 학살자로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은 극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전 아랍국을 상대
로 한 전쟁에서 승리하는 전쟁의 귀재였다. 2천 년 간의 세계 유랑생활을 마감하고
자 유대인들은 옛 역사의 땅 팔레스타인에 자신들만의 국가 이스라엘을 건국하였
다. 세계 각처에서 몰려온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국가로 선포한 뒤부터 국방부가
채 설립되기도 전에 전 아랍 국가들을 대상으로 전쟁을 치러야 했다. 당시 초대수상
을 역임한 벤구리온이 가진 깊은 고민은 국가 독립을 선포하자마자 치러야 하는 아
랍국들과의 전쟁이었다. 벤구리온의 참모들은 이스라엘이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하
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독립을 선포한 벤구리온은 전쟁을 시작했고, 이스라엘은 기
적처럼 여러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후 계속된 아랍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전쟁의 귀재로 거듭났다.
이스라엘은 매 전쟁에서 한번이라도 패하면 더이상 지구 어디에도 설자리가 없
을 것이라는 긴박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군사력보다는 정신력으로 승
리를 거둘 수 있었는데, 이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얻어지는 이스라엘에 유리
한 상황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뒤에서 이스라엘을 돕고 있다는 신앙적인 해석이

이스라엘은 진정 전쟁을 원하는가? 43


특집 | 팔레스타인에서 평화의 미래를 묻다

난무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대 아랍 전쟁은 세계 전쟁사와 정치사에서 자주


언급된다. 그 정도로 특별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신화적인 전쟁의 귀재에서 잔인한 학살자로 전락하게 된
것은 바로 팔레스타인 때문이다. 우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무기나 군사
력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가진 자치정부협상에
서 치안 유지를 위한 소총 소지 외에 다른 군사력은 보유할 수 없게 협정을 맺
었다. 그러니 팔레스타인이 돌을 던지면 이스라엘은 총으로 대응했고, 이쪽에
서 수제 로켓포와 자살폭탄으로 공격하면 저쪽에서는 전투기를 동원해 미사일
을 발사하고 탱크로 밀어 붙여 팔레스타인을 초토화시켜 버렸던 것이다. 사실
이것은 전쟁이 아니고 일방적인 파괴였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은 절대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스라엘에 저항해왔다. 세계는 초토화되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동정여론으로, 공격을 퍼붓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비난여론으로 들끓었다. 사
실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은 전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아랍세계의 여러 나
라를 상대로 군사력을 키워 온 이스라엘이 골리앗이라면, 소총이 전부인 팔레
스타인은 다윗과 같은 존재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이 노골화 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다.
그 첫 분쟁이 바로 1987년에 시작되어 1993년 오슬로평화협정으로 마감된 제1차
인티파다(Intifada)1)이다. 1차 인티파다 당시 팔레스타인인 1,200여 명이 사망했
고 이스라엘인은 160여 명이 사망했다. 두 번째로 발생한 분쟁은 2000년 9월에
발생해 2008년에 종결된 2차 인티파다이다. 이 기간에 이스라엘인 1,000여 명이
사망한 것에 비해 팔레스타인인 5,000여 명이 사망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의 핵심에는 하마스가 있다. 팔레스타인에는 두개의
정파가 있는데, 현재 요르단 서안을 장악하고 있는 세속주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인 파타(Fatah)2)와 가자지구의 종교적 이슬람운동단체인 하마스(Hamas)3)다. 이스라
엘은 건국 초기부터 1980년대 말까지 대이스라엘 투쟁을 벌이는 팔레스타인해방기
구(파타)를 무력화 시키는 것이 최대 숙제였다. 반면 초기의 이슬람운동단체인 하마
스는 그리 우려할 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44 특집 | 팔레스타인에서 평화의 미래를 묻다


하마스 설립자 아흐마드 야신은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슬람 자선단체
의 리더였다. 1973년 야신이 자선단체‘무자마 알 이슬라미야’
를 창립했을 때 당
시 가자지구를 통제하고 있던 군과 정보기관은 야신과 정기적인 만남을 가져왔
다. 야신이 병에 걸렸을 때는 병원을 주선해주고, 그의 단체가 암암리에 비축해
온 무기가 발견되었을 때도 이스라엘 공격용이 아닌 경쟁관계에 있는 팔레스타
인해방기구(파타)에 사용할 것이라 믿었다. 야신이 체포되었을 때는 선처를 베
풀어 석방을 돕기도 했다. 이런 점은 이스라엘 당국이 아라파트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견제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이슬람운동단체를 묵인해 온 결과였다.
이러한 이슬람운동단체가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에 저항하기 시작한 것은 1987
년 제1차 인티파다 때다. 온건한 평화노선을 걸으리라 여겼던 야신은 1988년에
하마스를 창립하고 대 이스라엘 투쟁을 주도해 왔다. 하마스가 처음으로 이스
라엘을 공격한 것은 1989년이다. 이때 하마스는 두 명의 이스라엘 군인을 납치
해 살해했다. 그리고 1991년‘이즈 에드-딘 알 카셈 여단’
을 창설해 본격적인 대
무력투쟁을 시작했으며, 그 뒤 1993년 처음으로 자살폭탄테러를 시작했다. 하
마스는 자살폭탄공격을 통해 이스라엘 군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무자비하게 공
격했다. 이스라엘이 요인암살을 시작한 것은 하마스의 자살폭탄공격의 배후를
찾아내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창립자 아흐마드 야신, 후
임 아흐마드 란티스 그리고 지목되는 모든 인물을 지속적으로 암살해왔다.
하마스의 요구는 대략 세 가지다. 1967년 이전 경계로 이스라엘의 정착촌 및
군 철수, 팔레스타인을 떠나있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환 그리고 독립될 팔
레스타인의 수도로 예루살렘을 삼겠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요구는 이스라엘
이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계속 난제로 남아있는 중이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이스라엘


하마스로 인해 이스라엘은 전투에는 이기고 전쟁에는 늘 패한다는 말이 있다. 전쟁
종결에 대해서는 우선 이스라엘이 휴전제안에 매우 적극적이었는데, 이에 반해 하마
스는 몇 번이고 거절한 끝에 결국 받아들였다. 눈덩이처럼 늘어난 팔레스타인 희생
자의 부담이 있는데다 빗발치는 세계의 비난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정
으로 이스라엘은 전쟁을 멈추게 된다. 이제 모두 하마스의 결정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진정 전쟁을 원하는가? 45


특집 | 팔레스타인에서 평화의 미래를 묻다

결국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처참하게 황폐화시키고도 끝까지 저항하는 하마스에


끌려 다니게 된 셈이다. 더 잃을 것도 없는 가자지구의 시민들은 늘 갈 데까지 가보
자는 입장이다. 반면 체면을 차려야 하는 이스라엘이 겪는 전쟁 후유증은 심각하다.
국내적으로는 너무 과잉대응했다는 좌파의 비난이 있는가 하면, 기왕 지상군을 투
입한 것이라면 이번 기회에 끝까지 하마스를 뿌리 뽑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우파의 비난이 동시에 일어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제여론이다. 가해자가 된 이스
라엘에 대한 비난이 위험수위에 다다를 정도다. 반 이스라엘 시위, 이스라엘제품 불
매운동,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위협 등 그 형태는 전방위적으로 나타났다.
사실 하마스와의 전쟁은 전
쟁이 아니다. 전투기와 탱크 등
최첨단 무기로 중무장한 이스
라엘에 비해 하마스는 수제로
만든 로켓포가 고작이다. 그럼
에도 하마스는 끝까지 저항한
다. 로켓포만 멈추면 대 하마스
공격을 중단하겠다는 이스라엘
의 포고에 하마스는 더욱 격렬
하게 저항한다. 하마스의 유일
한 무기인 로켓포는 아이언돔
아이언돔 (로켓포 및 야포 방어 시스템)이라
는 대응 미사일로 거의 99%를
잡아낼 수 있다. 비록 로켓포가
이스라엘 도시에 떨어진다 하더라고 이스라엘은 크게 위협받지 않는다. 그렇다
면 이길 수도, 크게 위협할 수도 없는 전력으로 이스라엘을 전쟁에 끌어 들임으
로써 하마스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하마스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이스라엘과의 전쟁은 늘 수많은 시민의 무
고한 희생을 낳는다. 하마스가 가자지구 시민들 속에 깊숙이 묻혀있기 때문이
기도 하다. 이스라엘로 발사하는 대부분의 로켓포 발사대가 민가에 숨겨져 있
다. 가정집, 병원, 학교, 모스크 등 시민들이 밀집된 지역이다. 이스라엘은 가자

46 특집 | 팔레스타인에서 평화의 미래를 묻다


지구에 띄워 놓은 무인 정찰시스템을 통해 가자지구에서 발사되는 로켓포의 발
사지점을 정확히 찾아내고 반드시 폭격을 가한다. 그곳이 민간인 거주지역이
라 희생자가 따를 것으로 예상될 때에는 전단지나 전화로 피하라는 사전경고
를 한다. 그러나 하마스는 시민들의 피신을 막거나 아예 폭격 당할 장소로 시
민들을 불러 모으기도 한다. 때로는 강제로 시민들을 볼모로 잡는다. 이스라엘
이 공격하는 공중폭격은 정확도가 높다. 그러나 그물망처럼 이스라엘로 뻗어나
간 땅굴은 전투기 미사일폭격만으로는 타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상군 투입
이 필수적이다. 지상군 투입 이후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자는 급속히 늘어났
다. 정확도가 떨어지는 탱크 포사격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적은 희생자 수에 비해 팔레스타인 희생자가 많은 이유는 이스라
엘의 무자비한 폭격도 문제지만 인간방패막이로 투쟁하는 하마스의 전략 때문
이기도 하다. 가자지구에서 취재 중인 외신기자들에 의해 이러한 사실은 간간
이 알려지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 희생자가 현격히 적은 것은 이스라엘로 날아
오는 수천발의 로켓포를 아이언돔이 모두 막아내기 때문이다. 하마스의 몇 십
만 원짜리 로켓포를 막아내기 위해 이스라엘은 대당 6천만 원짜리 아이언돔 미
사일을 발사한다. 2006년 레바논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 수천발의 카츄사 로켓
포에 1천 여 명이 사망한 것은 아이언돔 개발 이전이었다. 외부에서는 잔인한
이스라엘이라는 비난여론이 들끓지만 내부적으로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가능
한 모든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럼 가자지구 내에 하마스의 인간방패막 전술에 대해서는 어떤 반론도 없는
가? 이를 막을 수는 없는가? 현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혼란스러운 가자지구
에는 팔레스타인 파타정부도 들어가지 못한다. 하마스의 세상이다. 일단 가자
지구 내에 행정권을 쥐고 있는 하마스는 학교, 병원 등 민간인 지역에 아무 제
지 없이 로켓포를 설치하고 땅굴을 파들어 간다. 하마스의 본래 목적 중의 하
나가 팔레스타인 내 이스라엘 내통자를 처단하는 일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스
파이 혐의가 드러나면 가차 없이 공개 처형해 버린다. 여기에 가자시민 그 누구
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 전쟁이 시작되면 하마스 통제 하의 가자지구 내 외신기자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하마스가 제공하는 자극적인 정보에 의지하게 된다. 하마스 산하

이스라엘은 진정 전쟁을 원하는가? 47


특집 | 팔레스타인에서 평화의 미래를 묻다

의 보건당국에서 제공하는 사망자 수, 어린이·여성 사망자 비중, 가자시민들


이 제공하는 피해 상황, 최전선에서 발생한 정보와 사진 등 언론보도에 필요한
그 모두를 하마스가 제공한다. 기자들이 일일이 시신을 세고 다닐 수도 없으니,
그저 전해지고 제공받는 자료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하
마스는 가장 참혹한 사진을 수시로 언론에 흘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시리아에
서 발생한 처참한 어린이들에 대한 학살 사진을 올렸는데, 외신은 확인할 겨를
도 없이 가자지구의 참상이라며 잘못된 기사 내용을 세계에 타전하기도 했다.
거기에다가 선진화된 SNS를 통한 확산력과 파급력은 강력하여 순식간에 이러
한 정보가 퍼진다. 이외에도 하마스의 거짓말이 들통 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수십 년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통계가 있
다. 민간인 사망자 수다. 이들 통계 모두 하마스가 제공한다. 하마스 산하의 보
건국이나 팔레스타인 인권단체 모두 구체적으로 어린이들의 사망자 수와 여성
사망자 수를 분리해서 퍼센테이지(%)를 따로 제시한다. 처참하게 폭격당하는
가자지구와 피로 얼룩진 어린이의 시신, 죽음의 공포에서 울부짖는 모습들을
보며 동정심이 발동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마스는 이 모든 정황을 활용해
국제여론을 자극하고 있다. 결국 세계는 전쟁을 멈추라며 반(反) 이스라엘 시위
를 벌이게 되고, 이스라엘은 비난과 협박 그리고 각종 제재가 가해지는 전방위
적인 곤경에 빠지게 된다.

이스라엘은 전쟁광인가? 전쟁은 누가 결정하는가?


전쟁을 치르는 이스라엘은 어떻게 전쟁을 결정하는가? 이스라엘 정부의 주요한 모
든 결정은 크네셋이라고 하는 국무회의에서 결정된다.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정부체계를 갖고 있다. 수상이 자신의 권한으로 임명하는 장관
중에 자기가 속한 정당에서 임명할 수 있는 사람은 서너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다른 정당 출신이다. 즉 국무회의의 의장은 수상이지만 20여 명의 장관들은 은
혜를 입고 임명된 것이 아니라 연합정부에 참여한 대가로 각 정당들에게 할당된 각
정당들의 대표들이다. 다시 말해 수상과 불편한 관계에 있어도 임명되는 구조다. 각
장관들은 출신 정당의 성향을 대변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120석 의석 중 과반을 차지한 정당이 없다. 국회의석

48 특집 | 팔레스타인에서 평화의 미래를 묻다


120석 중 대략 20-30석이면 승
리 정당이 된다. 지역구가 아닌
비례대표제로 각 정당은 전국
적으로 득표한 표에 따라 의석
을 할당받는다. 소수정당이 대
부분이다. 따라서 승리정당이
되면 제일 먼저 국회의석의 과
반인 61석 이상을 확보하기 위 이스라엘 의회(크네셋)

해 여러 정당들과 연합정부구
성을 논의한다. 여러 소수정당
까지도 접촉해 61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연합정부에 참여한 의석에 비례해
각 정당에 장관직을 분배하기 때문이다. 이때 연합정부구성에 합류한 정당들은
세속정당에서 종교정당 그리고 우파 성향에서 좌파 성향까지 실로 다양하다.
그러니 국무회의에서는 늘 불꽃 튀는 논쟁이 벌어진다. 아주 민감한 사안일 경
우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을 때는 연합정부를 탈퇴하기도 한다. 한 정당의
탈퇴로 국회의원 61석이 무너지면 정부가 해산되는 것이다. 그러니 수상의 독재
가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은 전쟁과 같은 중대사안일 경우, 특히 공격 여부, 지상군 투입 여
부, 예비군 소집 등과 같은 사안은 국무회의에서 결정한다. 이때 중요하게 적
용되는 것이 국민여론이다. 각 정당대표는 정당의 지지자들의 요구에 따라 움
직인다. 국무회의 투표 직전에 찬성반대를 놓고 당론을 모으기도 한다. 그러니
좌파, 우파 성향의 장관들의 논쟁은 격렬해지고, 결국 모든 결의사항은 투표로
결정된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정책결정 과정이다. 수상이 전쟁을 벌일 마음이
없어도 국민이 뭔가 강력한 대응을 원하면 수상도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현재’
는 어느 정당이 주도하느냐를 보면 된다. 국민들은 자신들
이 원하는 성향의 정당을 지지한다. 2001년 이후 현재까지 이스라엘은 우파 리
쿠드당이 14년째 정권을 잡고 있다. 당분간은 이 성향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전
망된다. 좌파인 노동당 계열에 뛰어난 리더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이스라엘 국
민들 자체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진정 전쟁을 원하는가? 49


특집 | 팔레스타인에서 평화의 미래를 묻다

가자전쟁을 통해 본 이스라엘 여론 그리고 이후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면 늘 두 가지의 여론에 봉착한다. 하나는 좌파진
영의 시위다. 그 시위에서는 “지상군 투입만이 최선이 아니다.” “다수의 희생자 발생
이 뻔히 예상됨에도 지상군 투입을 강행한 것은 살인과 다름없다.” “네탄야후(이스라
엘 현 총리)는 퇴진하라.”와 같은 구호가 외쳐진다.
좌파시위 맞은편에는 또 하나의 시위가 벌어진다.“우리는 더 피난 가 있어도
좋다.”
“기왕 지상군이 투입될 것이라면 더 큰 희생이 있더라도 하마스를 전멸
시키고 테러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네탄야후는 너무 미온적이다.”
와 같은 주
장이 펼쳐진다.
두 진영의 반응은 이렇듯 극명하게 나뉜다. 네탄야후는 현 상황에서 어떤 선
택을 하더라도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리쿠드당 지지자들의 뜻에
의해 최대한 강경노선을 취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부정
적인 국제여론이 빗발치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87%
의 이스라엘 국민이 가자지구 군사작전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쟁광으
로 비춰지는 이스라엘 사회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유혈충돌이 발생할 때마다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전쟁을 즐긴다는 생각보다는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듯하
다. 이번 가자지구 전쟁에서는 64명의 이스라엘군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18명
이 장교들이다. 전쟁의 최전선에는 늘 장교들이 앞장선다. 그런데 이번 전쟁 말
미에 골딘 소위가 행방불명된 일이 있었다. 하마스의 손에 인질로 잡힌 것인지
아니면 사망한 것이지 여부로 이스라엘 사회는 모두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생포되어 인질이 되었다면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
될 조짐이었다. 골딘 소위의 아버지도“내 아들을 찾기 전까지는 가자에서 철수
하지 말라”
고 압박했다. 하지만 나중에 이스라엘군은 모든 정황을 종합해 골딘
소위가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이에 따라 대통령과 국방장관은 골딘 소위의 집을 직접 방문해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방문 자리에서 국방장관은 골딘 소위를 어릴 때부터 죽 지켜봐왔던
친척이라 밝혔다. 현직 대통령은 자신의 두 아들도 현재 가자지구에 투입되어
군사작전 중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스라엘인들 또한

50 특집 | 팔레스타인에서 평화의 미래를 묻다


‘전쟁광’
이라기보다는 늘 생존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오랫동안 이스라엘에 거주하면서 유대인이나 팔레스타인 사람이나
두루 알고 지내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만나면 이들은 평화를 원하고 평
화롭게 살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평
화를 원치 않는다고 주장한다. 다시 발길을 돌려 유대인들을 만난다. 유대인들
도 평화를 갈구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평화를 원치 않는다고 생각한다. 양측 모두 자신은 평화를 원하지만
상대방은 평화를 원치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두 민족 모
두는 상대방에 대한 오해와 강한 불신으로 언제든 재발될 분쟁의 불씨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강근 │ 박사는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현재 예루살렘


소재 유대학연구소 소장과 이스라엘한인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註)

1) 인티파다(Intifada)는 1987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에 3) 하마스(Hamas)는 이슬람 저항 운동 단체이다. 정당


대한 저항운동으로 팔레스타인 민족의 민중봉기이 이자 준(準)군사단체(paramilitary orgnization)로서
다.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을 하는 것으로 널리 알
2) 파타(Fatah)는 팔레스타인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려져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 캐나다, 유럽 연합, 일
를 세운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 계열의 정당이다. 팔 본은 하마스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는 반면 이란, 러
레스타인 해방 기구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팔 시아. 터키, 및 기타 아랍 국가들은 하마스를 지지하
레스타인 최대 정당으로 1993년 오슬로 협정으로 이 는 입장을 취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일부 국가들
스라엘과 공존을 추구해 왔으나, 2006년 총선에서 은 하마스의 무장조직인 이즈 아드 알 카삼 여단(Izz
하마스에 패배했다. ad-Din al-Qassam Brigades)만을 테러단체로 규정
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은 진정 전쟁을 원하는가? 51

You might also 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