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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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16.

그대여, 빚에 먹히리(6)
상황을 정확히 인지한 영주가 우선 제 편부터 챙기기로 했다.
유사시 자신을 지켜줄 건 그들밖에 없음을 알았던 것이다.
‘일단 여기 있는 녀석들은 내 편을 들어줘야 돼. 그래야 내가 살아.’
성난 영지민의 폭동으로 영주의 목이 날아가는 일은 그리 흔하진 않았지만, 과거 전쟁과
혼란이 지속되던 때에는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경우가 영주를 지켜야 할 시어나 군을 이끄는 수장들이 주도하여 생긴
일들이 많았다.
그들에겐 힘없는 영지민과 달리 못난 영주를 벌할 힘이 있었던 것이다.
이를 잘 상기시킨 영주가 다급히 목소리를 냈다.
“우선 진정들 하게. 내가 자네들 금화를 떼먹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야.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확신하네.”
그런 영주를 바라보는 오버시어의 눈빛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에 대한 실망이 짙었던 탓일까?
거기엔 그 어떤 충성심도 없어 보였다.
“그럼 서둘러 주십시오. 지금 이 순간 저희의 강철 같은 충성심은 약간의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부디 간절히 바라옵건대…… 저희의 이 충성심이 오늘 밤만으로 끝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카터 방코에 이자로 내주지 않았던 금화야 다행히도 가지고 있었다.
그 금화라면 당장 급한 시어들의 채권행사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당장은 그렇게 막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자신의 차용증서를 가지고 있는 모든 영지민에게 금화를 내줄 정도로 영주가 많은 금화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만약 금화가 부족하여 성난 영지민들을 달래지 못한다면 일이 어떻게 될까?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던 영주는 세금 문제까지 생각이 닿을 수 있었다.
‘지금도 어려운데 여기다 세금까지 안 걷히면…….’
영주로부터 금화를 받아내지 못한 영지민들은 이제 잠재적인 채권자였다.
빚쟁이 영주로부터 받아낼 돈이 있으니 대다수는 세금을 내지 않을 명분이 생기게 된다.
‘영지 운영이 많이 힘들어질 거야.’
영지민들이 채권행사를 이유로 세금을 내지 않게 된다면 당장 영지를 운영함에 있어 큰
애로사항이 생기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
하지만 자신이 남발한 차용증서를 해결할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그게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 애당초 그렇게 찍어내지도 않았을 테니까.
‘빌어먹을…….’
어딘가 모르게 화가 난 시어들을 이끌고 앞장서 걷는 영주의 표정이 제법 볼만했다.
늦은 밤.
원치 않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금화를 시어들에게 내주게 된 영주가 앞으로 마주할 거대한
악몽에 대해 생각해 봤다.
‘큰일 났군. 정말로…… 큰일 났어.’
반면 자신들의 금화를 되찾고 안도하는 시어들의 표정이 한없이 밝아지고 있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혹시나 했는데 그래도 저희 금화는 있었군요.”
“저희 금화는 찾았으니 나머지야 알 바 아닙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영주님.”
생각이 짧은 시어 무리가 영주에게 감사함을 전하자 영주도 약간의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도 미리 챙겨두었던 금화 덕분에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다음이 문제였다.
‘이제 어떻게 하지?’
모르긴 해도 이 모든 일은 자신이 금화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비롯된 바.
당장 금화가 필요해 보였다.
근데 어디서 가져와야 할까?
‘금화를…… 대체 어디서 빌리지?’
보통 금화를 빌리려면 방코에 들러야 했다.
여기선 카터 방코.
하지만 그 카터 방코가 적이 됐으니 그들에게 찾아가 금화를 빌린다는 선택지가 사라지고
말았다.
‘큭…… 그럼 다른 방코에 가야 하나?’
생각은 그리했지만, 여기 영지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방코라면 남발한 차용증서로
막대한 빚을 지고 있는 영주에게 금화를 빌려준다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단 걸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때.
영주성 밖에서부터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성난 영지민의 목소리가 그들의 귀까지 들려오는 걸 보니, 카터 방코에서 시작된 영지민
무리가 어느새 영주성까지 옮겨온 듯싶었다.
이를 듣고 눈가를 좁히던 오버시어가 목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카터 방코에서 넘어온 무리가 영주님께 항의하기 위해 찾아온 듯싶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외침만으로 그들이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뻔히 보였던 것이다.
영주가 짧게 한숨 쉬는 것도 잠시.
제 금화를 챙기고 다시 부하가 된 시어 무리를 향해 영주가 이전처럼 으르렁거렸다.
“뭣들 하나? 금화 챙겼으면 빨리 움직여야지.”
미래 일이야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시어들만큼은 당장 제 편이었다.
“지금 저들을 저리 놔둘 생각은 아니겠지?”
금화를 챙겼던 탓일까?
없던 충성심이 갑자기 샘솟았는지, 아니면 이전의 무서운 영주가 떠올랐는지.
금화를 챙긴 시어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본연의 의무로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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