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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6

시편 73

혼동의 세상 속에 하나님 중심적 삶의 필요성

요점: 우리가 겪는 현재의 어려움은 아마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예수를 거부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좋은 삶’을 사는 것을 경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 조차도 우리는 현재의 삶이
잠깐이면 지나가고 영원한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하고 천국을 지향하며 살아야 되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기도

요점: 신앙인으로 우리는 이 세상의 문제점들을 깊이 인식하고 정직하게 직면해야 하지만, 한편 우리


주님의 성품과 사역에 견고히 서야만 합니다-그가 누구이시고, 무슨 말씀을 하셨으며, 우리에게
무엇을 성취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는지를 말입니다.

1. 시편의 개관

(슬라이드 참조) 시편의 5 권은 각각 송영이나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라는 요청으로 끝이


납니다: 1 권(1-41); 2 권(42-72); 3 권(73-89); 4 권(90-106); 5 권(107-150) 이러한 구성에 대해 그
정확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아마도 무언가 예배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4 권과 5 권을 읽었습니다.

(슬라이드 참조) 시편의 흥미로운 유형 중에 하나는 “슬픔” 혹은 “고통”입니다. 150 개의 시편들 중에


62 개의 시편이 이 슬픔과 관계된 비탄시(애가)입니다. 개인적인 비탄이 있고, 회개의 비탄, 저주의
비탄(혹은 하나님의 심판을 요청하는)이 있습니다.

(슬라이드 참조) 시편에 나타난 이러한 애가(비탄)들은 중요하며 우리가 잘 이해해야 합니다.
탈무드는 말하기를 “슬픔이 깊을수록 말이 줄어든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편의 애가(비탄)는
오히려 “피해자의 목소리를 막지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들의 분노,
절망, 외로움/공포를 보게 하며, 그것들에 귀기울여 듣도록 초대합니다!

시편의 애가(비탄)시를 읽고 이해하게 됨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느낌을 갖는 사람들이 결코


우리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녁을 홀로 쓸쓸히 맞이하는 과부, 번번히 취업에
실패하는 구직자, 매우 부당한 고발에 사로잡힌 사람, 가까운 친구를 잃고 절망에 빠진 10 대 청소년,
모든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한 느낌을 받은 자들이 모두 놀랍게도 시편을 통해서 자신들의 경험과
느낌을 그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슬라이드 참조) 애가(비탄)시는 이 세상에서 겪는 고통에 함께하는 슬픔, 상처, 소외, 의문, 의심,
노여움, 혼동, 황당함을 당연시하고 일반화합니다. 진킨스(Jinkins)는 말하기를, “우리의 온갖 슬픔과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려고 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라고 합니다.

시편의 애가(비탄)시는 우리가 갈등을 겪을 때 읽으면 매우 유익합니다. 또한 우리가 잘 나갈 때 또한


애가(비탄)시를 읽으면 우리가 시련을 만나기 전에 그것을 대처하는 법을 미리 구축하는데 매우
요긴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이미 경헌 사람들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이죠.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으며 그것을 성장시켰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반드시 이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애가(비탄)시는 만일 우리가 바른 고난의


신학으로 무장하고 있다면 온갖 이상한 일들에 대항하여 하나님을 소망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영원한 슬픔(비탄)은 오직 영원히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린 사람들, 그리스도에게 무릎을
꿇고 신뢰하기를 거부한 사람들, 희망이 없는 현실을 그대로 맞이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만 속한
것입니다. 시편 73 편은 전적인 비탄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혜시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자주 넌센스 같고 혼동으로 점철된 세상 속에서 무엇을 진정으로 배워야 할 지혜를 깨닫게
해줍니다.

2. 시인의 정직함, 시편 73:1-15

A. 1 절, 기본적인 구약신학: 순종은 축복을 불순종은 저주를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합니다. 하지만 2 절에서 우리는 그럼에도 그 시인의
삶이 곤두박질치게 됨을 봅니다.

B. 사람들의 지각, 2-15 절, 시인이 체험하는 특별한 고통은 바로 그는 의인으로서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 가운데 그를 둘러싼 악한 사람들이 그보다 훨씬 ‘좋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분 부르짖기를 ‘이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합니다.

악인의 삶

1) 3-5 절, 악인들은 일견 축복의 삶을 삽니다.

2) 6-11 절, 그런데 그들은 율법을 무시하고 불순종하며, 그들 가운데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습니다-11 절 참조

3) 12 절, 결론: “이들은 악인이라: 그런데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시인의


질문은 궁극적으로 “도대체 정의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것입니다.

의인의 삶

13-14 절, 시인의 삶과 대조

13 절, 시인은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삽니다.

14 절, 하지만 그의 삶은 축복이 아닌 저주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Ric 의 시편 1 편 설교를 기억하세요!

C. 시인의 혼동

15 절, 시인은 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혼동이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그는 1 절이(하나님이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선을 베푸심) 때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음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거짓말하신 것일까? 그의 혼동에 대하여 어떻게 할지
모르지만, 그 혼동이 초래할 피햬를 성급하게 말하지 않으려고 조심합니다. 시인은 그가 가진
신학을 견지하려 하지만, 현실은 그것을 허물어뜨리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이 거짓말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이 그에게 심한
것을 주셨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이 그를 버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적용: 이와 같이 갈등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아마도 당신의 관심은 악인이 형통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얻지 못하는 축복을 다른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은 쉽게 배우자를 얻고, 직업도 갖고, 승진도 하고, 출발점부터 다르고, 상여금도 많고,
기도에 대해 응답도 쉽게 얻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런 느낌을 강렬하게 받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염려를 정직하게 아룁니다. 시편 10:1(-


11), 13:1-4; 22:12-2(-18); 25:16-18(죄로부터 겪는 환란); 31:9-13; 40:12; 41:5-9; 42:1-3, 9-10;
43:2; 55:1-7; 56:1-2, 5-6; 69:1-4b, 19-21; 88:1-18(친구와 하나님께 거절당한 느낌)

설명: 나의 기도

(생략)
3. 정의를 향한 갈망

정의를 향한 갈망은 시편 73 편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1-15 절에 결국 악인이


하나님의 중한 심판의 손길을 받게 될 때, 의인의 삶은 보상을 얻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시인의 갈등은 정의를 향한 것이지만, 그 정의를 향한 부르짖음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다만
함축되어 있습니다.

요점: 그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시인은 그 사실을 깊게 느끼고 있다, 15 절.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시편 73 편에서 시인의 마음 속에 요동치는 불평입니다.


이시인의 불평으로부터 갈망이 일어나되 이제 주께서 일하시고 악인을 공정하게 다르실 것이라는
갈망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비판(애가)시의 공통적인 요소입니다. 5:10; 17:13-14a; 28:4; 35:22-26;
40:13-15; 59:1-2; 43:1; 59:1-2; 43:1; 55:9; 56:7; 59:5, 11-13; 69:22-28; 70:2-3; 71:13; 109:6-15, 29;
137:7-9; 140:9-11

정직함은 선한 것입니다. 정의를 향한 바램도 선합니다. 그러나 정직함 만을 주장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만한 자기 중심적 생각이 됩니다. 정직함에 정의를 향한 갈망을 더한다고 해도 그것 만을 내세우면
그 역시 오만한 자기 중심의 복수심(vindictiveness)입니다.

우리는 발렌타인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슬픔(비탄)은 하나님을 향한 여정이지, 최종적인 목적지가


될 수 없다.” 그곳은 우리가 정착할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더 큰 무엇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 하나님에 대한 더 큰 그림의 관점입니다.

4. (없음)

5. 하나님에 대한 합당한 관점의 중요성, 73:16-28

시인에게 “전환점”은 매우 강력합니다. 그것은 상황의 변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초점의 변화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진리를 수용합니다. 결국 시인을 강하고 견고하게 한 것은 선하고
풍부하며 견고한 신학 곧 성경적 신앙입니다. 이를 통해서 시인은 마치 욥과 같이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하게 됩니다. 우리가 개인적인 감정이나 느낌이 아닌 성경 위에 우리의 믿음을 견고히
두어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삶의 혼동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16-17 절, “그들의 종말을 깨달았노니”

악인의 삶, 18-20, 27

의인의 삶, 23-26, 28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선명하게 깨닫고 주님 안에 곧 주님의 성품과 사역 안에


안식하게 되었고 그의 관점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렵고 힘들 때 슬퍼하고 애통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때에 하나님을 찾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마도 우리는 “특정 구절을 내게
폐기치 말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 그렇게 우리는 예민할 필요가 있지만, 그래서 우리가 정작
필요한 것은 바로 진리입니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흠뻑 적셔져야 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충족해야만 합니다.

(슬라이드 참조) 시인이 안식할 곳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하도록 해주십니다(23 절); 그를 통해서 우리를 “영광으로 영접하실” 것입니다(24 절);
하늘에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실” 것이고(25 절), 땅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25 절); 우리가 비록 쇠약하여도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분깃”이 되십니다(26 절);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하여” 결국 “망하는 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27 절);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을
얻는 복을 누리며,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는”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28 절). 오, 그리스도에게
감사하며 하나님 안에서 당신의 피난처를 찾으세요!

6.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슬라이드 참조)

A. 우리가 이 세상의 혼동과 씨름할 때 그리고 실망에 직면할 때 우리 안에서나 다른


사람에게서 그것을 정직하게 말하도록 허용합시다. 하지만 우리들의 관점이 제한적인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직면한 상황에 대해 정확히 규정할 만한 말을 우리가 충분히 알지
못합니다. 다시 발렌타인을 인요합니다. “슬픔(비탄)은 하나님을 향한 여정이지, 결코 마지막
종착지가 아니다!” 우리의 실망은 하나님께 향한 의존으로 인도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B.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비추어 당신의 갈등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로 여러분
자신을 충만케 하십시오. 성경은 우리가 설 견고한 기초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반드시 우리
생각의 전면과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말미암아 이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C.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에 안식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주


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 세상의 악에 대하여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천국을 향해 모든 것을 움직이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해 이것들에 이 희망을 작게
됩니다.

D. 하나님께서 이미 그의 백성들의 삶 속에서 일하고 계신 방식을 기억하십시오- 과거의


당신에게도, 현재의 당신의 공동체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스토리는 보다 큰
스토리의 일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다 큰 스토리에서 일하실 때나 여러분의 스토리에서나
다르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동일하시고, 여러분은 그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그
안에서 안식하실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고난 이전에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의 삶에
이미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이요-하나님은 당신이 ‘나는 여호와라!’하신 말씀을 증명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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