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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외전략과 동아시아안보협력체

-중국식 다자주의를 중심으로-

이한얼*

Ⅰ. 서론

중국은 개혁개방의 과정에서 지역•빈부격차, 공기업문제, 국경안보문제, 환경문제 등


국내적으로 결코 쉽지 않은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초고속 경제성장을
30년이 가깝게 유지해오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강화된 중국의 위상은 각 국가들로 하여금 그
국제적인 영향과 그에 대한 대응전략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중국의
부상은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더욱 민감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중국과의 지리적
근접성과 높은 수준의 경제적 상호의존도1 는 중국의 부상이 역내안보에 미치는 파급효과에
대한 논의와 중국의 역내 역할설정 등의 문제에 주목하게 했다.
중국의 대외관계의 전환점은 냉전종식과 그 시기를 같이 한다. 기존의 미-소 양강체제(兩
强體制)에서 필사적으로 생존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부터, 치명적 안보위협이 사라진 상황에서
경제적 이익을 확대하고 국제적 안보이익을 추구한다는 전략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더욱이 ‘以經促政’2이라는 말이 시사하듯 중국의 축적된 경제적 역량이 정치적 영향력으로
현실화되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국제관계와 관련된 행보는 더욱 적극성을
띠어갔다. 더욱이 중국의 입장에서 동아시아는 - 특히 중국이 서구의 포용정책과 봉쇄정책을
‘和平演變’3과 패권주의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 중국의 경제발전 및 세력확장을 위한
전초기지의 역할을 하고, 또한 아시아적 가치를 기반으로 서구에 대항하는 공동체적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지역으로 간주되기 시작한다. 동아시아국가들
역시 미국과 중국의 세력균형을 통한 역내안보를 확보하고, 다자협력체를 통해 중국과의
대화채널을 마련한다는 의도로 더욱 활발한 대중외교를 전개한다.
위에서 언급한 상황들을 중국-동아시아 관계의 측면에서 살펴보았을 때 장기적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즉 경제성장과 괘를 같이하여 지역안보문제에 대한 적극성이 제고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추세의 원인은
무엇인가? 인식적 전환인가 아니면 국제정치구조의 변화인가? 이러한 추세가 의도적인가?
그렇다면, 의도가 성공하는데 있어서의 제한요소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추세가 과연
지속될 것인가?
한 국가가 발전해가면서 그에 걸맞은 국제정치적 위상을 모색하는 것은 일면 당연해

1
* 서강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 1학기
?
중국의 대외경제활동의 70%가 동아시아 지역에서 이루어지며, 외국자본의 85%가 동아시아로부터 온다. 또한 1990
년부터 2000년 사이에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대중국 수출비중이 5.2%에서 10.2%로 2배 가까이 증대했다. 김재철, “
중국의 동아시아 정책,” 『국가전략』, 제9권 4호(2003), p10
2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정치적 성장을 촉진한다’
3
화평연변. 중국의 관점에서, 미국이 패권주의를 지향하는 중국의 세력강화를 견제해야 한다는 인식하에 중국의
내부로부터 체제변혁을 유도하기 위해 쓰는 전략을 말한다. 이는 사실 중국이 서방사회의 민주주의확산이나 인권외교
등을 체제적 위협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보이지만, 중국의 그것은 인식전환을 통해 다분히 전략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지역공동체에만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중국특색의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것, 그리고
협력테이블에서 자신이 원하는 의제만 다루는 것 등이 그렇다. 사실 인권, 환경, 에너지 등과
관련된 의제는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조가 요구되는 사항이므로 이러한 규범들에 대한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중국은 적극적 행동을 주저하고 있고, 주변국들은 안보적 규범의
제도화 요구가 중국과 자국의 운신의 폭을 제한할 수 있어 구체적인 논의를 피하고 있다.
이 글은 앞서 언급한 의문에 답하기 위한 시도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큰 틀에서 중국의
외교목표를 살펴봄과 동시에 그러한 목표가 도출된 인식적 배경을 살펴보고, 이어서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추구하는 정책적 목표와 전략을 살펴볼 것이다. 그 이후에
ASEAN(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al, 동남아시아 국가연합) 및 ARF(ASEAN
Regional Forum, 아세안 지역포럼)와 관련된 중국의 반응적 행태를 살펴봄으로써 중국의
동아시아지역 안보협력체에 대한 입장을 밝혀볼 것이다.

Ⅱ. 국제안보에 대한 상반된 인식의 공존과 대외정책

A. 상반된 인식의 공존
중국의 국제관계에 대한 관점은 현실주의적 인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4 혁명기에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마오쩌둥이 마르크스적 세계관에 근거한 이데올로기 외교를
펼쳤다면5, 근래에는 그러한 대외인식상의 이데올로기적인 요소가 내제화된 반면, 좀 더 다양한
측면에서의 현실주의적 인식이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중국의 대외인식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혼재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즉 ‘
안정된 국제 안보환경’이라는 인식과 ‘위협적인 불안요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환경’ 이라는 두
가지 인식이 섞여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제 어떠한 나라도 중국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첨예한 군사적 대립의 부재는, 앞으로 각 국가들이 스스로의 ‘綜合國力’을
통해 대결할 것이라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현실적으로 국가들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졌고,
따라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일•중•러 4개국이 가변적인 상태의 견제와 협력을 반복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을 통한 상호의존도 증가는 국가간 물리적 충돌이 가져올 비용을
증가시킴으로써 더욱 안정적인 안보환경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평화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둘러싼 불안요소들이 완전히 불식되지는 않고 있다는 인식도 존재한다.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로 불리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은 패권주의의 또 다른
이름으로 인식되며, 이는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자주권을 심각히 침해한다고

4
중국성립 이후의 역사 전반에 깔려있는 현실주의적 인식의 핵심은 국제관계를 자국의 상대적 우위를 추구하는 ‘힘의
정치(power politics)’로 설명하는 것이다. Wang Jisi의 말을 빌리면, 중국에게 세계정치는 영합게임(zero-sum game)
이므로 필연적인 위계가 존재하며, 강한 국가가 약한 국가를 지배하는 영역이다. Denny Roy, “A Historical overview
of Chinese Foreign Relations,” China’s Foreign Policy (Lanham: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1998), p37
5
Roy는 혁명기 중국의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에서, 역사를 추동하는 힘이 계급투쟁에서 나온다는 마르크스주의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믿음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충돌이 불가피하며, 자본주의국가가
사회주의 국가의 성장을 치명적인 위협으로 간주하여 억압하고 파괴하려 한다는 것을 전제함으로써 마오의 현실주의적
자강(自强)운동의 근거가 되었다. Roy(1998), p14. 최근 중국이 서구의 포용정책(engagement)을 ‘和平演變’
전략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이 내용은 중국대외정책에 있어서의 이데올로기적 요소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재된 것(internalize)된 것이라 생각된다.
받아들여진다. 중국이 냉전 이후 국제체제를 미국이라는 강대국과 힘의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한 다극체제가 공존하는, 즉 ‘一超多强’으로 이해하는 것도 극강(極强)의 위협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희망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국경과 인접한 지역 등에서
무력충돌이나 민족분쟁의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도 불안요인 중 하나이다. 결국, 중국의
대외관은 두 가지의 상반된 인식이 혼재하며 이 둘의 비중 변화가 중국이 현상유지적(status
quo)인지 아니면 수정주의적(revisionist)인지 결정하게 된다.6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것은 중국 내부에서 진행되는 보수화 경향이다. 최근의 티벳 문제에
대한 대응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과정에서 나타난 폭력행위는 극단적 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표출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경향은 인민해방군과 같은 보수세력을 통해
중국이 대외강경책, 즉 현실을 바꾸기 위한 공세적 태도를 취하게 할 수도 있다. 외부세계가
자국안보를 위협한다 생각되는 충격이 외부로부터 가해질 경우, 보수화 경향의 강화현상은
주변국에게 결코 반가운 결과를 노정하진 않을 것이다.

B. 대외정책과 그 목표
위의 인식을 바탕으로 중국대외정책의 목표를 추론해볼 수 있겠다. 우선 평화로운
안보환경의 시대라는 인식에서, 중국은 종합국력7 증강을 목표로 경제발전에 매진할 것이다.
‘韜光養晦’8는 그러한 의도에서 나온 전략으로, 타국과의 안보마찰을 최대한 피하는 전략을
통해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대외환경을 마련하고, 종국에는 국제적 영향력 증대를 실현시키려
한다. 중국은 이러한 경제발전추세의 심화는 타국과의 상호의존성을 증가시키고 중국의
국가이미지 제고를 위한 기회를 더욱 많이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더욱이,
광활한 영토를 가진 중국으로서는 이러한 전략이 국가의 내부적 응집력을 높여 체제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국경지역의 소수민족에게 공산당의 영도 하에서는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을 줌으로써 안보불안가능성을 감소시키고, 또한
대만통일문제에 있어서도 경제적 성과가 일정 정도 기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거대한
시장은 천안문 사태에 대한 서구의 보복성 제제를 단기간에 끝내는 효과를 내기도 했고, 그
실례로 중국은 1997년 4월에는 덴마크와 네덜란드가 유엔인권 위원회에서 중국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두 국가의 중국 내 기업들에게 불이익을 줌으로써 양국에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9
중국은 경제발전과 함께 반패권주의를 외치고 있다. 특히 초강대국인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면서 대만문제에 개입하고, 인권문제와 민주화문제등을 앞세워 중국의
내치(內治)에 간섭하는 것에 대해, 중국은 단극적(單極的) 패권주의의 전형을 보인다며
비난한다. 또한 그것이 대만에 대한 무력적 지원을 약속하는 형태와 중국 내부로부터 체제적
6
이동률, “중국의 대외전략과 동아시아 정치군사질서”, 『현대중국』, 창간호(1997), p184
7
종합국력은 주권국가가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 가지는 정신적•물질적 능력을 말한다. 이는 경제력, 정치력,
과학기술력, 국방력, 외교력, 문화교육능력(文敎力), 자원력 등 7대요소를 일컫는데, 이는 국가전략능력과 서로 작용•
반작용한다는 데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국가전략능력은 국가의 전략자원을 전략목표의 각 항목을 실현하는 능력을
말한다. 詹家峰,《现代国际关系》, 2005 年第4 期, http://www.irchina.org/news/view.asp?id=942, (검색일: 2008년
5월 20일)
8
타국을 자극 혹은 도발하지 않는 저자세 외교를 말함
9
자세한 상황에 대해서는, 이동률(1997), p189, 각주34) 참조
변화를 꾀하는 화평연변의 형태를 모두 포함한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중국의 체제전복을
의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이러한 맥락에서 세계의 여러 학자들이 제기한
중국위협론(China threat)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중국의 부상을 패권경쟁의 측면에서 분석한
중국위협론에 대해서, 중국은 국제사회에 더 협력적이고 평화지향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강대국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和平發展論’10과 ‘責任大國論’으로 대응하며
긍정적 이미지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11
마지막으로, 중국은 ‘통일’이라는 목표를 추구한다. 통일은 민족 정체성과 주권이 밀접히
관련된 문제로서 홍콩과 마카오가 반환된 이후 중국의 모든 관심은 대만과의 통일에
집중되어있다. 19세기 서구열강들에게 침탈당했던 치욕적인 역사를 가진 중국은 주권과
영토보존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며, 다시는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만이나 남사군도(南沙群島)
문제와 국경지역 분쟁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Ⅲ. 동아시아 정책

A.대(對)동아시아 선린우호정책
앞에서 언급한 경제발전, 반패권주의, 통일의 세가지 목표는 중국의 동아시아 정책에도
분명히 적용되는 원칙이다. 중국은 이 원칙들을 기초로 동아시아지역에 선린우호정책을
펼친다.
동아시아는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자연자원이 풍부 – 동남아시아의 경우 – 하여 오랜
시간 교류해왔다. 그와 동시에 이 지역은 중국이 지역강대국으로서의 부채를 떠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즉, 역사적으로 중국이 보여준 군사 및 문명 강대국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중국의 고속성장이나 군비확충 또는 남사군도
문제에 대한 반응들을 보아온 동아시아 국가들은, 외교적•경제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현실적 상황으로 인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두 번째 외교목표를 놓고 볼 때
이러한 불안감은 중국의 안보에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세력권에 완전히 편입됨으로써 중국견제를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가장
원하지 않는 이 시나리오는 중국으로 하여금 동아시아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해 재고(再考)
하도록 했다.
따라서 중국은 아시아적 가치를 강조하며 역내 협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199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국가 간 관계에 있어서 양자주의(bilateralism)을
선호하던 중국이 다자주의(multilateralism)로 방향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이러한 적극성은

10
화평발전론. 용어상 평화와 발전이라는 두 개의 개념이 합성되어 만들어진 용어로서 개념상 중국의 발전을 중국의
현대화 및 대국화 과정과 동일시하는 반면에, 그 발전 목적, 수단 및 결과는 모두 평화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중국의
외교전략이다. 한석희, 중국 제4세대 지도부의 화평전략을 중심으로,” 『신아세아』, 제11권 3호(2004), p119-120이
용어의 유래라 할 수 있는 화평굴기(和平崛起)와의 이념차이에 대해서는, 한석희(2004), p120을 참조.
11
중국위협론이 실제로 어떠한 근거도 가지지 못하며, 다만 무한한 경제성장의 가능성,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세계관, 거대한 영토, 사회주의 정치체제 등으로 인해 의사(擬似) 패권주의를 경험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박인휘, “의사(擬似) 패권주의: 중국위협론과 동아시아 지역안보,” 『사회과학』, 제39권 제2호(2000), p217~242
참고.
중국이 ASEAN과 같은 다자간 협의체의 세계경제에서의 지위상승과 역내 역할 강화를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실례로써 1994년에 다자안보공동체인 ARF에 창립멤버로
참여한 것과, 1994년 12월에는 ASEAN국가들과 “선린, 상호신뢰의 동반자관계(睦隣互信伙伴
關系)”를 맺고 그것을 발전시켜나가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사실을 들 수 있겠다. 중국은 이
밖에도 6자회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고, 남중국해 문제를
ARF에서 의제화하는 것에 동의하는 등 긍정적 모습을 보여왔다.12
이러한 중국의 동아시아 유화정책은 - 첫 번째 원칙에 근거하여 - 경제적 상호의존도
제고를 통한 역내 협력확대를 추진하고 외교관계를 긴밀히 하여, 지역분쟁이나 국지전 발발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하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패권주의가 동아시아지역에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도 있을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그로 인해 형성된 평화적 안보환경을 통해 중국의
역내영향력을 확대하고,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의 위상강화를 기대하는 것이다.

B. 대(對)일본 정책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대적할 수 있는 강대국이라면 일본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은
미국과 강력한 군사동맹을 바탕으로 역내에 공동안보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대(對)테러전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협조를 요청했고 결과적으로 일본의 안보역할 확대를
불러왔다. 이러한 안보변화는 중국으로 하여금 1996년 4월 미•일 신안보조약 체결 당시
걱정했던 ‘미•일이 연합하여 중국을 견제한다’라는 시나리오를 떠오르게 했다. 더욱이 미•일과
중국 양측의 긴장의 중심에 대만이 위치하고 있어 그 긴장감이 배가되었다. 따라서 중국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으로 ‘以夷制夷’전략을 통해 상대를 견제하려 한다. 또한 ASEAN이 그
균형을 깰 수 있는 요소로 거론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일과 중•러 대립구도는 냉전시기의 그것과는 그 속성자체가 다르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국가 간의 교류가 확대됨에 따라 서로의 이해관계가 이슈에 따라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중국이 2001년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중•러
선린우호 협력조약’을 맺었음에도, 9.11이후 대(對)테러활동에 있어서 미국에 협조하는 대미
유화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러시아 역시 같은 이유로 미국과의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졌다.
이러한 현상들이 시사하는 바는, 각국의 관계에 있어서 양면적 현상이 공존하고 그것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지역에서 강대국 간 대립구도형성을 전제하고 중국의
의도를 읽으려 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생각된다.

Ⅳ. 동아시아 안보공동체와 중국의 입장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의 다자협력공동체에 대한 인식은 199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기본적으로 중국의 대외인식적 흐름은 평화공존 5항 원칙을 기반으로 한

12
남중국해문제의 ARF의제화에 대해서는, 한석희, “ARF와 중국: 중국의 안보적 구속에 대한 논의,” 『국제정치논
총』, 제42집 4호(2002), p382 참조.
양자관계의 특징을 보여왔다.13 외부세력의 간섭을 혐오하고, 협상이라는 수단을 선호하는
중국이 다자간협력에 소극적인 것은 명백해 보인다. 더군다나, 당시의 경우 다자간협력체에
참여하는 것이 마치 외교의 자주성이 상실되는 것으로 인식되어 비동맹(不結盟)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 안보협력체인 ARF에
참여하고, 1996년에는 상해협력기구(SCO), 2002년에는 ASEAN국가들과 FTA체결을 주요
의제로 하는 ASEAN 10+1에 참여하는 등 다자간 협력에 적극성을 띄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의 주요한 인식적 요인은 ‘주변’에 대한 중국의 인식이 바뀐 것이다. 80년대
이전의 ‘주변’ 개념이 중국의 개혁개방과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있었던 구소련과
서방세계였다면, 90년대 이후로는 근린국가로 바뀌게 되었다. 경제발전에 있어 서방세계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던 중국이 천안문 사태에 대한 서구의 제제로 인해 타격을 받자, ‘
동아시아 개발국가들의 눈부신 성장’이 안보전략 차원에서 이용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이 석유 수입국으로 입장이 바뀌자 개혁개방의 지속을 위한
에너지 및 수송로확보가 중요해졌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동남아시아는 주요협력지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14 그렇다면, 이제 중국의 다자주의협력의 시대가 열린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중국이 외교적으로 역내 다자주의협력을 강조하고 중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의 다자주의협력은 서구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서구에서는
다자주의협력이라는 이슈에 대해서, 중국의 제도주의(institutionalism)적 및 구성주의
(constructivism)적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제도주의적 변화의 핵심은,
체제구축과정에서 국가에 대한 간섭이 가능하며, 국가는 공동의 이익에서 도출된 지역적
규범과 규율에 순응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제도적 제재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국가는 구속(enmeshment 혹은 tie down)을 받아들였을 경우의 사회적 이익과 비용을
계산하고 그 이익이 클 경우 다자간 협력체에 지속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15 이에 비해,
구성주의적 변화는 세계적 규범과 가치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이 가진 가치관을 조정하고 국가
또한 세계적 규범에 영향을 미치는 유기적 상호관계를 말한다. 결국, 점진적이든 급진적이든
사회화(socialization)를 통한 세계체제 편입과정을 거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16
중국이 처음으로 ARF라는 지역안보공동체에 참여했을 때 전 세계는 중국이 다자주의를
근간으로 한 제도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이해하였다. 하지만, 중국은 전술적 선택을 한
것이지 포용정책을 수용한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다. 중국은 ARF에서 얻을 수 있었던 전술적
이점을 포착한 것이다. 바로 아세안적 방식(ASEAN way)이 그것이다. 아세안적 방식의 세가지
주요 원칙 - 국가 간의 내정간섭금지를 뜻하는 ‘restraint’, 국가 간 자주 협의하는 것을 뜻하는
‘respect’, 그리고 타국의 주요관심사에 대한 고려를 의미하는 ‘responsibility’17 – 이 잘
13
패권주의에 반대하고 국가간의 분쟁은 반드시 협상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독립자주 평화외교노선으로 영토의 보존,
주권의 상호 존중, 상호 불가침, 상호 내정불간섭, 호혜평등, 평화공존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서진영, 『21세기 중국
외교정책』, 폴리테이아(2006), p111
14
주재우, “다자간협력체에 대한 중국의 입장과 정책 변화: 상해협력기구와 “10+1의 구상을 중심으로,” 『
현대중국연구』, 제4집 2호(2002), p195-198
15
한석희, “중국의 부상과 책임대국론: 서구와 중국의 인식적 차이를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제44집 1호
(2004), p196; 구체적인 제도주의적 접근법에 대해서는, 한석희(2002), p377
16
구성주의에 대해서는, Alexander Wendt, “Anarchy is What States Make of It,” International Politics, Art and
Jervis, p61-68
17
Shaun Narine, “ASEAN and the ARF: The Limits of the “ASEAN Way”,” Asian Survey, Vol. 37, No. 10,
보여주듯, 아세안적 방식은 주권중심의 규범과 합의를 통한 정책 결정 그리고 체제의 제도화를
최소화하는 것을 그 운영 원칙으로 한다. 결국, 서구가 말하는 제도주의적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즉 체제 내적인 변화 또는 외부로부터의 제재를 경험하지 않고도 충분히 국가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ARF는 갖추고 있었다.
중국이 전술적 선택을 했다는 사실은 대만문제, 남중국해 문제, 그리고 군사적
투명성문제를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대만문제는 동아시아 안보의 주요의제이다. 중국이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거나 무력시위를 하면 주변국들의 안보불안 수위가 급상승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게 대만문제는 국내문제로 분류되어 안보공동체에서는
의제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고, ARF회원국 역시 중국과의 관계 경색을 우려해 쉽사리
강경책을 취하지 못한다. 남중국해 문제의 경우는 중국이 한발 물러남으로써 완전히 해결된
듯이 보이지만, 해당지역의 영토적 주권을 포기한 것도 완화한 것도 아니며, 표면상의
협력의지만을 강조하며 양자관계에 기반한 해결책 모색을 주장하고 있는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군사적 투명성 문제는 만약 해결된다면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지역안보의 전환점을 기대할
만한 것임에도, 중국의 비밀주의18로 인해 아무런 진전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안보이론들이 설명하듯, 정확한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은 불확실성(uncertainty)을
감소시킴으로써 국가 간의 협력을 고취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군사정보 교류의 결정체라
기대되던 국방백서의 내용이 형식적인 선전과 패권주의에 대한 비난으로 채워짐으로써, 오히려
국가간 신뢰구축을 위한 ARF의 지역안보논의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19
결론적으로, 중국의 동아시아 안보공동체에 대한 기본적 입장은 양자주의의 입장을
유지하면서 중국식의 다자주의, 즉 제도화의 최소화, 주권존중, 협의를 통한 문제해결 등을
전제하는 공동체에만 적극성을 보이는 것이다. 최근에 ASEAN+3와 ASEAN 10+1 등의
협력체가 등장하고 있으나 이 협력체에서도 경제협력에 대한 강조가 주류를 이루고 안보적
논의는 구체적으로 거론되기 어렵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또한 공동체의 이름이
시사해주듯 여전히 아세안적 방식을 끌고 가는 경향이 분명하므로 역내 주요안보의제에 대한
돌파구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된다.20

Ⅴ. 결론

지금까지 논의를 통해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자국의 전략적 안보이익 극대화를 위해


중국식 다자주의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중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1997), p965
18
중국이 군사문제에 있어서 비밀주의로 일관하는 것은 군사정보의 유출은 곧 국가약점의 노출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군사력이나 무장수준은 상당히 낙후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또한 종종 대만과 비교되기도
하기 때문에 비밀주의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제성장을 통한 강대국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시기에
그와는 상반되는 군사적 약점의 노출은 대국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19
한석희(2002), p381-385 참조
20
Narine(1997). 저자는 그의 논문에서 ASEAN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약소국이라는 공통점을 기반으로 호의적
(inhospitable)이지 않은 외부환경에 공동대응하려는 인식이 싹틈으로써 가능했다고 말하면서, ARF와 같은 강대국과
약소국이 뒤섞여있는 형태의 경우, 단지 아세안적 방식을 채택했다는 이유로 ASEAN이 경험했던 성공을 담보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ARF가 그 자체만의 새로운 규범 혹은 규칙(rule)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ASEAN에서 발전된 형태의 다른 지역다자공동체의 경우도 자신만의 새로운 규범의 정립없이는 그 성공을 보장받지
못할 수 도 있다는 주장도 가능할 것 같다.
종합국력의 축적이며 국제적 위상의 강화이다. 중국은 종합국력의 축적을 위해 다양한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증대시킬 것이고 평화롭고 점진적인 개혁을 이뤄내기 위한 안보환경
마련에 골몰할 것이다.
이러한 안보환경의 확보가 기존의 강대국과의 충돌을 전제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서구열강으로부터 침략 당한 기억을 가진 중국에게 서구학자들이
제기하는 중국붕괴론이나 중국위협론은 무고(無故)한 것이고, 서구가 중국의 부상에 대해
국제적 규범을 수용하라 요구하는 것은 화평연변전략에 다름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서구가 대만문제나 남중국해문제를 거론할 때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함께 주권이 침해되었다는
분노가 엄습한다. 이러한 분노는 천안문 사태에 대해 서구가 가한 경제적•정치적 제재 이후
극에 달한다. 하지만, 이런 분노는 두려움 역시 동반했다. 따라서 서구에 대한 지나친 경제적
의존에서 벗어날 필요성이 생겼으며 다자주의에 대한 서구의 요구를 표면적으로라도 들어주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90년대 동아시아지역이 정치적•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중국은 주변국들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는데 관심을 가졌고, 동시에 협력안보체제를 표방하는 동아시아협력체를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에 대항하는 기반으로 삼게 되었다. 더욱이 국내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자 천연자원
매장지인 동남아시아와의 협력과 함께, 그 수송로 확보와 관련하여 남중국해나 대만과 관련된
안보문제의 중요성이 배가 되었다. 이러한 전략적 배경을 바탕으로 중국은 동아시아에 대해
선린우호관계 확립을 기본 정책으로 하여 ASEAN, ARF, ASEAN 10+1, ASEAN+3 등의 경제
및 안보협력체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중국이 창립 회원국으로 ARF에 참여했을 때, 앞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주요 안보이슈인
대만문제와 남중국해 문제 그리고 국제적 규범의 수용 등의 문제 해결이 급물살을 탈것이라
기대했던 건 서구뿐 만 아니라 역내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구가
기대했던 제재 혹은 사회화를 전제로 한 수용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고, 주권중시, 협상을
통한 해결, 제도화의 최소화를 원칙으로 하는 아세안적 방식의 한계로 지역안보 이슈의 해결
역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지역안보협력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반패권주의라는 외교목표에
부합하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중국은 동아시아 안보협력체에 있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중국식 다자주의원칙에
긍정하는 국가들로 구성되어있고, 중국이 패권주의라고 비난하는 미국 역시 해당 안보협력체에
참여하지 않는다. 게다가, 안보협력체가 가진 시스템 역시 중국의 내정간섭에 대한 혐오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으며, 규범의 강요라는 측면에서 다른 국제기구와는 차별적인 유연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일정기간 동안, 이러한 협력체에의 참여를 선호할 것이며,
더 나아가 다자간안보협력체에서의 주도권을 잡음으로써 국제적 위상강화를 추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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