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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타자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할까

타율의 몰락

타율은 1900 년대 초중반 야구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는 지표였다. 안타를 칠 확률을 의미하는

타율은 타자의 실력 그 자체였다. 1940 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가능하면 많은 단타 (베이스 하나를

이동할 수 있는 안타)를 생산하는 것이 모든 선수들과 구단들의 목적이었다.

1916 년, F.C.레인이라는 인물은 겨우 베이스 하나를 이동하는 단타보다는 한번에 여러 베이스를

이동할 수 있는 장타, 홈런의 가치가 높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레인은 그 해 62 경기의 자료들을

종합해서 단타는 겨우 0.45 점의 가치를 가지지만 2 루타는 0.79 점, 홈런은 1.55 점의 가치를

가진다는 분석 결과를 냈다. 레인의 이 분석은 야구에 통계학이 적용된 첫 사례였으며, 야구 통계학의

시초로 여겨지지만 당시 야구계에서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그러나 1944 년 브루클린 다저스의 단장은 놀라운 모험을 한다 - 통계학자 앨런 로스를 구단에

영입한 것이다. 로스는 당시 팀 최고의 선수를 트레이드 시켜버리고 최초의 흑인 선수를 기용하는 등,

파격적인 구단 운영을 보여준다. 다저스의 단장은 로스가 주장했던 이론들을 하나의 글로 묶었고,

이때부터 세이버메트릭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출루율과 장타율, 그리고 OPS

출루율 (On-Base Percentage) 은 타자가 아웃되지 않고 1 루에 진출할 확률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득점하기 위해서는 먼저 타자가 1 루에 출루해야 한다. 1 루에 도착하는 방법은 안타를 치는 것 외에도

뛰어난 선구안으로 볼 4 개를 골라내는 방법이 있다. 안타와 볼넷은 큰 차이가 없는 기록이지만, 타율

(Batting Average) 은 볼넷을 무시하고 안타 확률만을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에 불공평함이 있다.

출루율은 이런 불공평함을 보완하는 지표이다.


장타율 (Slugging Percentage) 은 타자가 한 번의 타격에서 몇 개의 베이스를 이동하느냐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같은 안타여도 1 루까지만 갈 수 있는 1 루타와 2 루까지 갈 수 있는 2 루타,

홈까지 바로 들어올 수 있는 홈런이 있는데, 타율에서는 모든 안타가 동등 취급되기 때문에 홈런을

많이 생산하는 타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장타율은 이런 불공평함을 보완하는 지표이다.

이 자료들에도 단점이 없지 않다. 이들은 서로를 보완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출루율에는 장타율의

장점인 “같은 안타여도 그 가치를 다르게 평가한다”가 없다는

단점이 있고, 장타율에는 출루율의 장점인 “안타 외의 출루를

평가한다”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현대 야구에서 타자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는 이

둘을 더한 OPS 라는 기록이다. OPS 는 단순히 출루율과 장타율을

더해서 구하는데,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려서 출루

능력과 장타 능력을 모두 담고 있는 지표라고 평가받는다.

이 글을 읽으시는 확률과 통계, 혹은 수학 선생님이라면 이 영화를

본 적이 있으실 수도 있다. 바로 브래드 피트 주연의 <머니볼>. 이

영화는 2002 년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세이버메트릭스를 무시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실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오클랜드는 주축 선수들이 모두 팔려 나간데다가 재정난으로 예산이 다른 팀들의 절반도 안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빌리 빈 단장 (브래드 피트 분) 이 등장한다. 그의 전략은

간단했다. 저평가받고 있는 선수들을 영입하라.

가치는 있는데 저평가받는 선수들. 바로 타율이 낮지만 OPS 가 높은 선수들이었다. 빌리 빈 단장은


아직 세이버메트릭스를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구단들을 등쳐먹고 훌륭한 선수들을 낮은 가격에

수집했다. 그 결과, 다른 구단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예산으로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낸다.

2000 년대 들어서도 온전히 야구판에 녹아들지 못했던 세이버메트릭스는 머니볼 이론의 영향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다룬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남궁민 주연의 <스토브리그>.

재정난을 겪고 있는 팀이 세이버메트릭스 전문가 팀을 동원해 구단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서

우승한다는 내용이다. (뻔한 내용이기는 했지만, 최종화 시청률이 19%를 넘기면서 스포츠 소재

드라마로는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WAR 로 보는 선수의 가치

여전히 OPS 는 가치 있는 기록이다.

그러나, 선수가 팀에 기여한 정도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오른쪽 표는 현재 KBO (한국 프로야구)

의 OPS 순위이다. 1 위 양의지 선수와

2 위 강백호 선수. 이 둘 사이에 OPS

차이는 0.025. 이 선수들에게 연봉을 지급한다고 했을 때, 0.025 차이의 OPS 라면 연봉에 어느 정도

차등을 둬야하는가?

WAR (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 은 이런 고민을 덜어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개념은 단순하다. “

선수 A 를 기용하면 ‘땜빵’ 선수를 기용했을 때보다 몇 승을 더 가져갈 것인가?” 너무 단순한

개념이다 보니 계산도 간단하다. 땜빵 포수로 한 시즌을 버텨서 70 승을 가져갔던 팀이 WAR 4 인

포수를 영입한다면 다음 해에는 74 승을 가져가리라는 식이다.

이렇게 단순하다 보니, 선수들을 평가하기 매우 좋은 자료이다. 메이저리그 공식 발표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구단이 1 승을 하기 위해 선수에게 지급하는 돈은 평균 1050 만 달러, 즉 120 억 정도라고


한다. 즉, WAR 3 짜리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360 억 정도로 잡으면 된다는 뜻이다.

선수의 가치 평가하기 OK. 예산 계산하기 OK. 다음 해 성적 예상하기 OK. 완벽한 자료인가?

안타깝게도, WAR 에는 여러 가지 결점들이 많이 보인다. 우선,

타자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수비 반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수비

위치에 따라 WAR 반영하는 공식이 나와있기는 하지만

수비라는게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자료로 해석할 수 없는

내용이다 보니 신뢰할 수 없다. 또한, 20 점 차에서 18 점차로

따라가는 점수와 (아무 의미 없음) 1 점 지고 있던 경기를

역전시키는 점수를 (1 승과 같은 가치) 동등 취급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는 WAR 이 기록에

나와있는 숫자만 보고 계산하는 자료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이다.

투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투수의 역할은 9 이닝을 막아내는 것인데, 주로 선발 투수들이 6~7 이닝,

불펜 투수들이 2~3 이닝을 막는다. 언뜻 보면 선발 투수들이 훨씬 중요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선발 투수들은 힘조절을 하며 길게 던지는 것이 목적이라면, 불펜 투수들은 1 점차, 2

점차 타이트한 상황에서 잠깐이라도 실점하지 않는 역할을 가지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WAR 은

이런 사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무조건 오래 버티는 투수가 높은 WAR 을 가지고, 불펜 투수들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WPA 로 보는 승리 확률

WPA 는 승리 확률 기여도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현대 야구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는 기록 중

하나이다. 우선 팀의 승리 확률을 계산한 다음, A 선수의 플레이가 끝나고 나서의 승리 확률을 다시

계산한다. 이 둘을 빼면? A 선수의 플레이를 통해 승리 확률의 변동 폭을 알 수 있다.

다음은 KBO 기록실에 발표된 사진이다. KIA 의 멩덴 투수가 5 회 말에 1 루수 라인드라이브 아웃을

잡았다. 이 결정적인 아웃카운트를 통해 그는 승리 확률을 64%에서 74.1%로, 10.1% 올리는


역할을 했다. 이 경우, 멩덴의 순간 WPA 는 0.101 승이 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한 선수가 한

시즌동안 펼친 수백, 수천 플레이들의 WPA 를 모두 합치면 이

선수가 한 시즌동안 팀에 기여한 승리가 몇 승인지를 구할 수

있는 식이다.

이 지표가 널리 인정받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바로 “영양

가”를 평가하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자료로는

“득점권 타율”이라는 자료가 있었다. 안타 하나면 득점과

바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에서의 타율만을 계산한 것으로,

중요한 상황에서의 성적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중요한 순간은 표본이 너무 적었다는

사실이다. 겨우 두 자릿수의 표본으로 인해 매년 일관성 없이 막 왔다갔다하는 득점권 타율은 선수의

능력을 평가하기에는 유의 확률 p 값(우연)이 너무 큰 자료였다.

이와 달리, WPA 는 선수의 모든 사소한 플레이 하나하나를 모두 반영하기 때문에 표본이

어마무시하게 많아서 신뢰할 수 있는 자료이면서도, 결정적인 상황에서 선수가 발휘하는 능력을

평가한다.. “결정적인 순간을 고려하면 표본이 적어서 신뢰할 수 없다”는 명제를 보기 좋게

부정해버리는 WPA 는 현대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로 떠올랐다.

실제 사례로 선수를 평가해보자

지금까지 다뤘던 WAR 와 WPA 를 바탕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일까? 실제 2021 진행중인 KB

O 리그의 선수들의 자료를 예시로 들어서 살펴보도록 하자.

리그 모든 선수의 WAR 합은 전체 경기의 승리, 즉 720 승이 나오지만, WPA 는 확률이기 때문에

모든 선수의 합이 0 이 나온다. 제로섬 게임이다. 어떤 타자가 WPA 0.3 을 얻는 플레이를 했다면 그

플레이를 허용한 투수는 WPA -0.3 을 얻는 셈이기 때문이다. WAR 와 WPA 를 비교하는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이를 항상 떠올리면서 살펴봐야 한다.

먼저, WAR 이다. 1 위인 이정후 선수의 타격 실력은 팀에 4.59 승을 보태줄 수 있는 실력이다.


그러나, WPA 가 1.34 승으로 위의 내용을 감안해도 WAR 에 비해 너무 낮다. 즉, 타격은 잘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해결해주지 못하는, 결정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선수라는 뜻이다.

이에 반해, WPA 가 WAR 과 거의 맞먹을 정도로 높은 선수도 있다. 바로 양의지 선수와 강백호 선수.

이들은 타격 능력도 출중하고 중요한 순간 해결 능력도 강력한 선수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기록을 자주 남기는 양의지 선수는 재작년 125 억대 계약을 맺으며 역대 연봉 2 위에 올라섰다.

이처럼, WPA 와 WAR 이 있다면 선수의 능력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겨우 숫자 몇 개로 선수의

능력을 분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비롭지

않은가? 이게 세이버메트릭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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