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essional Documents
Culture Documents
윤사 교과서 원문
윤사 교과서 원문
110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베이컨
인간은 자연의 사용자 및 해석자로서 자연의 질서에 관해 실제로 관찰하고, 고찰한 것만큼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그 이상의 것은 알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다. 인간의 지식이 곧 인간의 힘이다.
[베이컨, 『신기관』, 미래엔 윤사 교과서]
우리에게는 천연의 우물이나 분수를 모방해서 만든 인공 우물이나 분수도 있습니다. 황산이나 황ㆍ강철ㆍ
청동ㆍ납ㆍ초석을 비롯한 기타 광물질이 섞인 온천도 있습니다. 많은 물질들을 주입해서 실험하기 위한
자그마한 우물도 있습니다. 여기에 물질을 넣으면 그릇에 담긴 것에 비해서 물의 반응 속도가 훨씬
빨라집니다. 이 실험의 결과, 우리는 천국의 물이라고 불리는 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물을 마시면 건강이
증진되고 생명이 연장됩니다. …… 우리에게는 건강의 방이라고 불리는 특수한 방이 있습니다. 건강에 좋은
공기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질병 치유와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됩니다.
[베이컨, 『뉴 아틸란티스』, 미래엔 윤사 교과서]
지금까지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경험에만 의존하거나 독단을 휘둘렀다. 경험에만 의존하는 사람들은
개미처럼 오로지 자료를 모아서 사용하고, 독단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거미처럼 자신의 속을 풀어내서 집을
짓는다. 그러나 꿀벌은 중용을 취한다. 즉 들에 핀 꽃에서 재료를 구해다가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켜
소화한다. 참된 학문의 임무는 이와 비슷하다. 참된 학문은 경험이나 실험을 통해 얻은 재료를 지성의
힘으로 변화시켜 소화해야 하는 것이다.
자연의 사용자로서 또는 자연의 해석자로서 인간은 자연의 질서를 직접 관찰하고 고찰한 그만큼만 자연에
대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또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우리가 당면한 고난의 원인은 독단과 연역법에 있다. 존경할 만하지만 의심스러운 명제를 의심의 여지 없는
출발점으로 삼고, 이러한 전제 자체를 관찰 또는 실험에 의해 검토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진리를 찾아내지 못한다. 신이 부여한 권리이자 의무인 자연에 대한 온전한 지배를 위해서는 계획된 실험을
통해 얻은 원리를 토대로 또 다른 실험을 전개하여 새로운 지식을 얻어내야 한다.
[베이컨, 『신기관』, 미래엔 윤사 교과서]
그곳에는 당시보다 뛰어난 성능의 렌즈, 인공의 무지개를 만드는 기술, 음향 연구소, 동력 연구소, 수학
연구소 등이 있다. 솔로몬 교단 사람들은 새의 날개 모양을 이용하여 하늘을 나는 방법을 고안했고, 물
밑을 가는 배와 영구 운동을 하는 물건도 발견하였다.
[베이컨, 『뉴 아틀란티스』, 씨마스 윤사 교과서]
이곳에서는 접목이나 모종에 대한 온갖 실험을 하고 있소. 그리하여 과수원에서 기술을 사용하여 나무나
꽃을 제철보다 빠르게 혹은 늦게 피도록 하고, 또한 자연적인 상태보다 빨리 피든가 열매를 맺게 하고
있소. 또 기술에 의해 자연 그대로의 경우보다 훨씬 크게 만들 수도 있소. 그런 과일은 한층 크고 맛이
있는데, 맛이며 향기며 색깔이며 모습이 천연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오. 그러한 것의 대부분은
의약품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조정되어 있소. 또 수류나 조류를 위한 여러 종류의 자연원이나 울도
있소. 그것을 만든 것은 관람이나 단순히 진기하기 때문이 아니라, 해부나 실험 등을 하기 위해서요. 이와
같이 하여 인간의 신체에 어떠한 것이 작용되는가를 밝혀내고 있소. 이를테면 생명에는 결여되어서는 안
되게 되어 있지만, 여러 부분이 못쓰게 되든가 밖으로 나오든가 하더라도 그러한 생물류 중에서 생명이
지속되는 것이 있는지를 실험하고 관찰하는 것이오. 온갖 독물이나 그 밖의 약물들을 실험하고 있으며,
내과용과 외과용으로 사용하고도 있소.
[베이컨, 『베이컨 수상록』, 천재 윤사 교과서]
111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베이컨
우리가 만든 물을 마시면 건강이 증진되고 생명이 연장됩니다. 우리는 유성의 체계와 운동을 모방한 거대한
건물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서 눈, 비, 우박 등을 인공적으로 내리게 하며, 천둥과 번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 한 번 먹고 나면 오랫동안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고기, 빵, 음료수도 개발하였습니다.
[베이컨, 『뉴 아틀란티스』, 천재 윤사 교과서]
연역법의 기반이 되는 논리학과 삼단 논법은 새로운 과학을 정립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논리학은
진리를 탐구하기보다는 그들이 기초하고 있는 잘못된 토대를 공고화하거나 고착하는 데 봉사할 뿐이다.
그리고 삼단 논법은 과학에 적용될 수 없었고 쓸데없는 공리만을 양산했다. 이는 자연의 미묘함에 도저히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삼단 논법은 명제를 확증하는 데 사용할 수 있지만 사물의 진리에 접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베이컨, 『신기관』, 교학사 윤사 교과서]
솔로몬 학술원에서는 신의 섭리와 신이 창조한 피조물에 대해 연구하고, 사물의 숨겨진 원인과 작용을
탐구하여 인간의 목적에 맞게 사물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다양한 곳에서 과학적 관찰과 실험을 하며, 해수와
담수를 서로 전환하고, 인공 눈과 비를 만들기도 한다. 식물 성장 촉진을 위한 배양토 제작, 품종 개량을
위한 접목 등 다양한 농업 실험을 한다. 또한 동물 해부와 교배, 복제 실험도 한다. …… 발달한 과학
기술을 통해 농작물이나 축산물이 아주 풍부하게 생산되며, 생활은 아주 편리하다. 학술원 회원은 화려한
복장과 금은으로 치장한 물건을 들고 다니며, 청중들에게 많은 하사품을 준다.
[베이컨, 『새로운 아틀란티스』, 교학사 윤사 교과서]
112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스피노자
삶에서 무엇보다 유익한 것은 가능한 한 이성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며, 오로지 이것에 인간의 최상의 행복,
즉 지복(至福)이 존재한다. 지복이란 신의 직관적 인식에서 생기는 정신의 만족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성을
완전하게 하는 것은 신, 신의 속성, 그리고 신의 본성의 필연성에서 생기는 활동을 파악하는 것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미래엔 윤사 교과서]
삶에서 무엇보다 유익한 것은 가능한 한 지성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며, 오로지 이것에 인간의 최고의
행복이 있다. 진실로 최고의 행복은 신(神)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나오는 정신의 만족일 뿐이다. 그런데
지성을 완전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신과 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 나오는 활동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이 품고 있는 최고의 욕망은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온전하게 인식하려는 욕망이다.
지복은 덕의 보상이 아니라 덕 그 자체이다. 우리가 자신의 육욕을 억제하기 때문에 지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지복을 누리기 때문에 육욕을 억제할 수 있다.
무지한 자는 외부 원인들에 의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시달림을 받아 참된 마음의 평화를 결코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신과 사물을 모르는 것처럼 살며, 작용받는 것을 멈추자마자 존재하는 것도 멈춘다.
이에 반해, 현자(賢者)는 거의 영혼이 흔들리지 않고, 어떤 영원한 필연성에 의해 자신과 신과 사물을
인식하며, 존재하기를 결코 멈추지 않고, 항상 참된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
[스피노자, 『에티카』, 미래엔 윤사 교과서]
113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스피노자
무지한 자는 외부의 원인들 때문에 이리저리 동요하고 결코 정신의 참된 만족을 누리지 못하며 자기 자신과
신과 사물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산다. 그리고 외부의 존재로부터 받는 작용을 멈추는 순간 즉시
존재하기를 멈추게 된다. 이에 반해 현명한 자는 정신이 거의 동요하지 않고 자신과 신과 사물을 영원의
필연성에 따라 인식한다. 그리고 그는 존재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언제나 정신의 참다운 만족을 누린다.
[스피노자, 『에티카』, 비상 윤사 교과서]
정신 안에는 절대적이거나 자유로운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신은 이것 또는 저것을 의지하도록
어떤 원인에 의해 결정되고, 이 원인 역시 다른 원인에 의해 결정되며, 그것은 다시 또 다른 원인에 의해
결정되는 식으로 무한히 진행한다.
[스피노자, 『윤리학』, 씨마스 윤사 교과서]
우리는 우리 존재의 보존에 도움이 되거나 해가 되는 것을, 즉 우리의 활동 능력을 증대하거나 감소하고,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것을 선 또는 악이라 부른다. …… 선과 악의 인식은 기쁨이나 슬픔의 정념 자체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기쁨이나 슬픔의 관념일 뿐이다.
[스피노자, 『윤리학』, 씨마스 윤사 교과서]
진정한 덕은 오직 이성의 인도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무능력이란 자신의 외부에 있는
것들이 자신을 인도하도록 하고, 자신의 본성이 그 자체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사물이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것에 따라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피노자, 『윤리학』, 씨마스 윤사 교과서]
이성은 자연에 반(反)하는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으므로 이성은 모든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추구하라고 요구하며,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고자 노력할 것을
절대적으로 요구한다.
[스피노자, 『에티카』, 천재 윤사 교과서]
외부에는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추구할 만한 것이 많다. …… 맛있는 음식, 좋은 향기, 푸른 식물의
아름다움, 장식, 음악, 운동, 연극, 그리고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각자가 이용할 수 있는 이런 종류의
것으로 자신을 상쾌하게 하고 원기를 북돋우는 것은 현명한 사람의 모습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천재 윤사 교과서]
114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스피노자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는 데 다음과 같은 것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다. 즉, 모든 사람이 모든 측면에서
일치하여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것, 그리하여 할 수 있는 한 모두가 함께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천재 윤사 교과서]
인간의 삶에서 무엇보다 유익한 것은 우리의 이성을 가능한 한 완전하게 하는 것이며, 오직 이것에 최고의
행복이 있다. 최고의 행복이란 신을 인식함으로써 생기는 정신의 만족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천재 윤사 교과서]
최고의 행복은 덕의 보상이 아니라 덕 그 자체이다. 우리가 자신의 욕심을 억제하기 때문에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최고의 행복을 누리기 때문에 욕심을 억제할 수 있다. …… 이러한 것들에
이르는 길은 매우 어렵게 보일지라도 그 길은 발견될 수 있다. 그리고 물론 그렇게 드물게 발견되는 것은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만일 구원이 가까이에 있고 커다란 노력 없이도 발견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거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무시하겠는가? 그러나 모든 탁월한 것은 드물 뿐만 아니라 어렵다.
[스피노자, 『에티카』, 천재 윤사 교과서]
미움은 사랑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이성에 인도되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욕구하는 선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욕구한다. 여기에 다음이 더해진다. 정신이 강한 사람은 무엇보다 모든 것이 신적 본성의 필연성에서 생긴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따라서 그가 불쾌하고 악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과 비도덕적이고 무서우며 불공정하고
수치스럽게 보이는 모든 것은 사물을 어지럽고 훼손되게 그리고 혼란스럽게 생각하는 데에서 생긴다는 것을
고려한다. 그러므로 그는 무엇보다도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고 노력하며, 참다운 인식의 방해물들, 즉
미움, 분노, 질투, 조롱, 오만 등을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최고의 선을 누리도록
충고나 행동으로 그들을 돕고자 하는 사람은 그들의 사랑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신을
경탄해 자신의 가르침이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도록 노력하지 않는다. 그는 질투의 어떤 원인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단점을 지적하는 데 신중하며, 사람의 무능력을 말할 때 조심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덕이나 능력, 그것을 완성하는 방법은 많이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들이 두려움이나
혐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기쁨의 감정에 움직여 가능한 한 이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천재 윤사 교과서]
115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스피노자
우리는 증오하거나 경멸, 조롱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분노하거나 누구를 시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여야 하며, 이웃들에게 편파성 또는 미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이성의
인도에 의해서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스피노자, 『에티카』, 교학사 윤사 교과서]
이성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즉 이성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바라지 않는 어떤 것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욕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공정하며
성실하고 또한 정직하다.
[스피노자, 『에티카』, 교학사 윤사 교과서]
우리는 신을 완전하게 이해함으로써 완벽한 마음의 평화를 갖게 된다. 즉, 신에 대한 이해는 최고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완전한 행복은 신을 인식하는 데에서 성립하며, 이를 통하여 사랑과 도덕성이
요구하는 것만을 행할 수 있다.
[스피노자, 『에티카』, 교학사 윤사 교과서]
본성상 강건한 사람은 모든 것이 신의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 생겨난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둔다. 따라서
자신이 보기에 불쾌하고 악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과 비도덕적이고, 혐오스럽고 정당하지 않고, 수치스럽게
보이는 모든 것은 자신이 사물 자체를 무질서하고 왜곡된 방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는 점을
깨닫는다. 이런 까닭에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고 노력하며, 진정한 인식에
장애가 되는 것들, 즉 미움, 분노, 질투, 조롱, 오만 등을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스피노자, 『에티카』, 교학사 윤사 교과서]
116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흄
행동의 가치는 이성과 부합되는 속에서 유래되는 것이 아니고, 그 허물도 이성과 상반되는 속에서 유래되지
않는다. …… 이성은 어떤 행동에 대해 부인하거나 찬동함으로써 직접 그 행동을 중단하거나 유발할 수
없으므로, 그 행동을 중단하거나 유발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밝혀진 도덕적 선악을 구별하는 원천일 수
없다. …… 행동의 잘잘못은 흔히 우리의 자연적 성향과 상충되며, 우리의 자연적 성향을 억제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성에는 이런 영향력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도덕적 구별은 이성의 산물이 아니다.
우리의 도덕적 신념들은 ‘이성’보다는 ‘감정(정념)’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다. 이성은 감정의 노예일 뿐이고,
감정에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직무를 탐해서도 안 된다. 이성은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도덕적 신념의 근원이 될 수 없다. 이성은 감정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그리고 우리가 고통과 좌절을 피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정보들을 우리에게 전해 줄 수 있을 뿐이다. 반면에 감정은 행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도덕적 행위에 있어서 누구나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감정, 즉 ‘공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리고 어떤 행위를 옳게 만드는 것은 그 행위의 ‘효용’, 즉 그 행위가 ‘공공의 선’과 사람들
일반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능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미래엔 윤사 교과서]
어떤 사람에게 왜 운동을 하느냐고 물어보라. 그는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왜 건강하기를 원하느냐고 물어보라. 그는 곧바로 질병은 고통을 주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더 이상 질문을 던져서 왜 고통을 싫어하는지 그 근거를 알고 싶다고 한다면 그는 더 이상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궁극 목적이며 다른 어떤 대상을 지적할 필요가 전혀 없다.
[흄, 『도덕 원리에 관한 연구』, 미래엔 윤사 교과서]
117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흄
개인적인 쾌락과 이익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공통의 관점으로 대상을 조망하지 않는 한,
사람들의 소감과 판단은 결코 언제나 일치할 수 없다. 성격을 판단하는 경우, 모든 관찰자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이익이나 쾌락만이 …… 더 불변적이고 보편적이므로, 현실적으로도 우리 자신의 이익과 평형을
이루며, 덕과 도덕성의 유일한 기준으로 인정된다. 그와 같은 이익과 쾌락만이 특정한 느낌이나 소감을
산출하는데, 도덕적 구별은 이 느낌이나 소감에 의존한다.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비상 윤사 교과서]
이성은 감정의 노예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따르고 뒷받침하는 이외에 다른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
…… 이성은 우리의 행위에 오직 두 가지 방식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하나는 적절한 대상의 존재를 알려
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감정을 움직이게 해 줄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인과관계를 밝혀 줌으로써 우리에게
감정의 행사 수단을 제공해 줄 경우이다.
[흄, 『인간 본성론』, 씨마스 윤사 교과서]
인류애가 허영심이나 야망처럼 그렇게 강한 것으로 평가되지는 않을지 모르나, 그것은 모든 인간이 공유한
것으로서, 유일하게 도덕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흄, 『인간의 지성과 도덕의 원리에 관한 탐구』, 씨마스 윤사 교과서]
그(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자)는 자신의 개인적이고 특수한 상황을 떠나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관점을
취해야 한다. 그는 인간 본성 안의 보편적 원리를 움직여, 모든 인간이 거기에 화답할 수 있는 소리를 내야
한다.
[흄, 『인간의 지성과 도덕의 원리에 관한 탐구』, 씨마스 윤사 교과서]
유용한 행위는 우리의 쾌감, 즉 그것을 시인(是認)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일상의 경험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유용성인가? 물론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도대체 누구의
이익인가? …… 만약 유용성이 도덕의 원천이고, 이 유용성이 항상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어떤 것이
아니라면, 사회의 행복에 기여하는 모든 것은 곧바로 우리의 쾌감, 즉 우리가 그것을 시인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흄, 『인간의 지성과 도덕의 원리에 관한 탐구』, 씨마스 윤사 교과서]
악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행위, 가령 고의적인 살인을 생각해 보자. 이 행위를 모든 면에서 검토하고, 당신이
악이라고 말하는 사실이나 실재적 존재를 발견할 수 있는지 고찰해 보라. 그 행위를 어떤 방식으로 보든지
간에 당신은 오직 특정한 정념, 동기, 의지, 그리고 사고만을 발견할 뿐이다. 이 경우에 다른 사실은 없다.
당신이 대상을 살피는 한, 당신은 악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당신이 고찰의 방향을 당신 자신의
마음속으로 돌려 살인에 대해 당신 안에서 일어나는 거부의 감정을 찾을 때까지, 결코 악을 발견할 수
없다. 여기에는 사실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느낌의 대상이지 이성의 대상이 아니다. 그 사실은
당신 자신의 속에 있지, 대상의 속에 있지 않다.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천재 윤사 교과서]
우리가 감정과 이성의 반목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엄밀하게 그리고 철학적으로 말하고 있지 못하다. 이성은
감정의 노예이며 또한 그래야만 한다. 이성은 감정에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 말고 다른 어떤 역할도 요구할
수 없다.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천재 윤사 교과서]
118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흄
적의 훌륭한 품성은 우리에게 해롭지만 우리의 존경심을 유발할 수 있다. 어떤 품성이 도덕적 선 또는
악이라 불리는 감정을 일으키는 경우는 오직 그것이 우리의 개별적 이익과 무관하게 일반적으로 고려될
때이다.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천재 윤사 교과서]
이성 혼자서는 그 어떤 의지 작용의 동기가 될 수 없으며, 이성은 의지를 지도함에 있어서 감정에 반대할
수 없다.
악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행위든지 살펴보자. 이 행위를 모든 면에서 검토하고, 당신이 악이라고 말하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지 고찰해 보라. 당신이 대상을 살피는 한, 전혀 악을 발견할 수 없다. 당신이
고찰의 방향을 자신의 마음속으로 돌려서, 당신 안에서 일어나는 부인의 감정을 찾을 때까지 결코 악을
발견할 수 없다.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천재 윤사 교과서]
악덕과 덕은 단순히 관념들의 비교 혹은 이성에 의해 발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악덕과 덕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이 일으키는 어떤 인상 또는 감정에 의해서 임이 틀림없다. 도덕적 올바름과
악함에 관한 우리의 결정은 명백히 지각이다. 그리고 모든 지각은 인상이거나 관념이므로 이 가운데 하나의
제거는 다른 하나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명이다. 따라서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도덕성은 판단된다기보다
오히려 느껴지는 것이다.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천재 윤사 교과서]
이성은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도덕적 신념의 근원이 될 수 없다. 이성은 감정들을 충족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가 고통과 좌절을 피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정보들을 우리에게 전해 줄 수 있을 뿐이다. 반면에 감정은
행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교학사 윤사 교과서]
119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흄
120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칸트
여러 국가들이 그들의 권리를 추구하는 방식은 국제 법정에서의 소송과 같은 것이 아니라 전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쟁에 의해서도, 승리에 따른 전리품의 획득에 의해서도, 권리는 결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비록
평화 조약에 의해 그때그때의 싸움은 멈춰질 수 있다고 할지라도 전쟁 상태가 종식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특별한 종류의 연맹이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평화 연맹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리고 평화
조약과 구별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들이 전쟁을 포함하는 무법천지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하게 이성적인
출구는 다음의 길밖에 없다. 그들 국가는 개인의 경우처럼 야만적인 자유를 포기하고 그들 스스로를 공법의
규제에 내맡기는 한편, 궁극적으로 전 세계 모든 국가를 포함할 국제 국가(civitas gentium)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법의 이념에 의해서는 이들 국가는 이것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옳은 것이 실천에서는 거부된다. 그러므로(만일 모든 것을 잃지 않으려면) 세계 공화국이라는 적극적인
이념 대신에 소극적 대안으로서 연맹을 구성하는 것이다.
[칸트,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미래엔 윤사 교과서]
121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칸트
(도덕) 법칙만이 존경의 대상일 수 있고 그래서 명령이 될 수 있다. 의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객관적으로
보면 법칙뿐이며 주관적으로 보면 실천 법칙에 대한 순수한 존경, 즉 나의 모든 경향성을 포기하고서라도
그 법칙을 따르겠다는 준칙뿐이다.
할 수 있는 한, 선행을 하는 일은 의무이다. 그 밖에도 천성적으로 동정심이 많은 사람들도 많아서 그들은
허영이나 사익과 같은 어떤 다른 동인 없이도 자기 주위에 기쁨을 확대하는 데서 내적 만족을 발견하고,
그것이 자기의 작품인 한에서 타인의 만족을 기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주장하거니와, 그러한 경우에 그
같은 행위는 매우 의무에 맞고 매우 사랑받을 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런 참된 윤리적 가치를
갖지 못하며 오히려 다른 경향성들, 예컨대 명예에 대한 경향성과 같은 종류이다. 명예에 대한 경향성은
만약 그것이 다행히도 실제로는 공익적이며 의무에 맞고 그러니까 명예로운 것에 해당한다면, 칭찬과
격려를 받을 만하지만 존중받을 만한 것은 못 된다. 왜냐하면 그 준칙에는 곧 그러한 행위들을
경향성에서가 아니라, 의무로부터 행하는 윤리적 내용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 박애가의
마음이 자신의 깊은 슬픔으로 흐려져 타인의 운명에 대한 모든 동정심을 없애 버렸고, 그는 여전히
고난받고 있는 타인들을 돌볼 능력이 있음에도 자기 자신의 고난에 극도로 얽매여 있기 때문에 남의 고난은
그를 자극하지 못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제 어떠한 경향성도 더 이상 그를 그렇게 하도록 자극하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그가 이 치명적인 무감수성에서 벗어나 아무런 경향성 없이 오로지 의무에서 그 행위를
할 때, 그때 그 행위는 비로소 진정한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
[칸트, 『도덕형이상학 정초』, 미래엔 윤사 교과서]
‘행복 원리’와 ‘도덕 원리’를 구별한다고 해서 이것이 곧 양자의 대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순수한 실천
이성은 행복에 대한 요구를 포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의무가 문제가 될 때는 그런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오히려 어떤 점에서 볼 때는 자기의 행복을 배려하는 것은 의무일 수도
있다. 일부는 행복[숙련, 건강, 부 등]이 그의 의무를 실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이요, 다른 일부는 행복이
없는 것[가난 등]은 자기의 의무를 위반하게 만드는 유혹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의 행복만을
촉진하는 것은 결코 직접적인 의무일 수 없으며, 더구나 모든 의무의 원리일 수는 없다.
[칸트, 『실천이성비판』, 미래엔 윤사 교과서]
122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칸트
그것을 자주 그리고 계속해서 숙고하면 할수록, 점점 더 새롭고 점점 더 큰 경탄과 경외로 마음을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에 있는 도덕 법칙이다.
[칸트, 『실천이성비판』, 비상 윤사 교과서]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칸트, 첫 번째 정언 명령, 씨마스 윤사 교과서]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결코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도 대하도록
행위하라.
[칸트, 두 번째 정언 명령, 씨마스 윤사 교과서]
123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칸트
선악의 개념은 도덕 법칙에 앞서서가 아니라, (얼핏 보면 이 개념이 도덕 법칙의 기초에 놓여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도덕 법칙에 따라서 그리고 도덕 법칙에 의해서 규정될 수밖에 없다.
[칸트, 『실천이성비판』, 씨마스 윤사 교과서]
그러나 그의 군주가 그를 즉시 사형에 처하겠다고 위협하면서 그에게 한 정직한 사람에 대하여(이 사람은
군주가 그럴듯한 구실을 대어 파멸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위증할 것을 부당하게 요구한다고 할 때,
비록 생명에 대한 그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가 그것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지
아닌지 그에게 물어보라.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 어쩌면 그는 확신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틀림없이 그는, 그런 일이 자기에게 가능하다는 것만은 주저 없이 시인할 것이다.
[칸트, 『실천이성비판』, 씨마스 윤사 교과서]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더 새로워지고, 더 큰 감탄과 존경으로 내 마음을 채우는 것 두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 법칙이다.
[칸트, 『실천이성비판』, 씨마스 윤사 교과서]
완전한 선의지는 (선의) 객관적인 법칙들 아래에 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것이 법칙에 맞는
행위를 하도록 강요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완전한 선의지는 오로지 선의 표상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적인 의지와 신성한 의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명령도 타당하지 않다.
여기서는 당위가 있을 바른 자리가 없다. 왜냐하면 의욕이 이미 스스로 법칙과 필연적으로 일치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령은 의욕 일반의 객관적 법칙과 이런저런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 예컨대 인간 의지의
주관적 불완전성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정식일 따름이다.
[칸트, 『윤리형이상학 정초』, 천재 윤사 교과서]
124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칸트
의무로부터의 행위는 그 행위를 통해 달성해야 할 의도가 아니라, 그 행위가 결의되는 준칙에서 그것의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 …… 의무는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부터 말미암은 행위의 필연성이다. 나는 내가
뜻하는 행위의 결과로서의 객관에 대해 경향성을 가질 수는 있지만, 결코 존경을 가질 수는 없다. ……
그러므로 행위의 도덕적 가치는 그것에서 기대되는 결과에 있지 않으며, 또한 이 기대되는 결과에서 그
원리의 동인을 얻을 필요가 있는 어떤 행위 원리에도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결과는 다른 원인들에
의해서도 달성될 수 있을 터이고, 그러므로 그것을 위해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무조건적인 선은 오로지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에서만 마주칠 수 있다. 그래서 예상되는
결과가 아니라 법칙의 표상이 의지의 동인인 한에서, 두말할 것도 없이 오로지 이성적 존재자에서만 생기는,
이 법칙의 표상 자체만이 우리가 윤리적이라고 부르는 그러한 탁월한 선을 이룰 수 있다.
[칸트, 『윤리형이상학 정초』, 천재 윤사 교과서]
125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칸트
의무이기 때문에 하는 행위는 그 행위를 통해 달성하려는 의도나 목적이 아니라, 그 행위를 결심할 때
준수하는 준칙에서 도덕적인 가치를 갖는다.
[칸트, 『도덕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교학사 윤사 교과서]
국제법의 최종 목표인 영구 평화는 표현 불가능한 하나의 이념이다. 그렇지만 영구 평화를 지향하는 정치적인
모든 원칙은 표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국가의 권리에 기초하여 설정된 과제이므로 확실히 실현
가능하다.
[칸트, 『윤리형이상학』, 교학사 윤사 교과서]
[ 로스 ]
126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벤담
자연은 인류를 고통과 쾌락이라는 최고의 두 주인이 지배하도록 하였다. 우리가 무엇을 행할까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지시해 주는 것은 오직 고통과 쾌락뿐이다. 한편으로는 옳음과
그름의 기준이, 또 한편으로는 원인과 결과의 사슬이 두 주인의 왕좌에 고정되어 있다. 이들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에서, 우리가 말하는 모든 말에서,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사고에서 우리를 지배한다.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 미래엔 윤사 교과서]
자연은 인류를 두 군주, 즉 쾌락과 고통의 지배하에 두었다.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 것인가뿐만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이 두 요소이다. 한편으로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른
한편으로는 원인과 결과의 연쇄가 오직 이들의 지배에 달려 있다. 그들은 우리가 행하거나 말하며 생각하는
것 모두를 지배한다.
공리란 이해 당사자에게 이익, 쾌락, 좋음, 행복을 가져다주거나 해악, 고통, 악, 불행의 발생을 막아 주는
경향을 가진 어떤 대상의 속성을 의미한다.
공리의 원리(principle of utility)는 쾌락과 고통이 우리를 지배함을 인정하고 이것을 전체 체계의 기초로
삼는다. 이러한 체계의 목표는 이성 또는 법률의 손으로 조직적인 행복을 구성하려는 것이다.
어떤 행위가 공동체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경향이 그 행복을 감소시키는 경향보다 더 클 때 그 행위는
공리의 원리에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정책은 공동체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경향이 행복을 감소
시키는 경향보다 더 클 때 공리의 원리에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다.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미래엔 윤사 교과서]
한 행위가 가져다주는 쾌락의 총량과 고통의 총량을 계산해 보라. 이 둘을 비교하여 차감했을 때 쾌락 쪽이
남는다면 그 행위는 관련자 전체 또는 개인들이 모인 사회와 관련해서 일반적으로 좋은 성향을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고통 쪽이 남는다면 일반적으로 나쁜 성향을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리의 원리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당사자들의 행복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또는 촉진하거나 억누르는)
경향에 따라서 각각의 행위를 승인하거나 부인하는 원리를 의미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각각의 행위란
개인의 사적인 모든 행위뿐만 아니라 정부의 모든 정책까지 포함한다.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미래엔 윤사 교과서]
우리가 동물의 이익을 고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나로서는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다.
그들을 고문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있는가? 그렇다. …… 설령 다리의 숫자, 피부에 털이 있는지의 여부,
뼈의 모양 등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차이가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의 고통을 방관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성 능력인가? 아니면
의사소통 능력인가? 하지만 완전히 성장한 말이나 개는 갓난아이 또는 태어난지 일주일이나 한 달이 지난
아이보다도 훨씬 합리적이다. 또한, 우리는 어린아이들에 비해 그들과 훨씬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설령 그들의 능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다르더라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문제는 그들이
사고할 능력이 있는가, 또는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이다.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미래엔 윤사 교과서]
자연은 인류를 고통과 쾌락이라는 최고의 두 주인이 지배하도록 하였다. 우리가 무엇을 행할지 결정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지시해 주는 것은 오직 고통과 쾌락뿐이다. 한편으로는 옳음과 그름의
기준이, 다른 한편으로는 원인과 결과의 사슬이 이 둘의 옥좌에 매여 있다.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관한 서론』, 비상 윤사 교과서]
공리의 원리는 이해 당사자의 행복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것처럼 보이는, 혹은 달리 말해서 그의 행복을 증진
하거나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향에 따라서 각각의 행동을 승인하거나 거부하는 원칙을 의미한다.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관한 서론』, 비상 윤사 교과서]
공리의 원칙이란 이해당사자의 행복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것처럼 보이는 혹은 달리 말해서 그 행복을
증진하거나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향에 따라 각각의 행동을 승인하거나 비난하는 원칙을 의미한다.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씨마스 윤사 교과서]
127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벤담
인간은 본성상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가지 최고의 주인의 지배를 받고 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려 주는 것 역시 오직 고통과 쾌락일 뿐이다.
한편으로는 옳음과 그름의 기준과 다른 한편으로는 원인과 결과의 사슬이 이 두 주인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고통과 쾌락은 우리가 행하고 말하고 생각 하는 모든 것을 지배한다.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씨마스 윤사 교과서]
자연은 인류를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주인에게서 지배받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무엇을 할까 결정하는 일은
물론이요, 무엇을 행해야 할까 짚어 내는 일은 오로지 이 두 주인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옳음과 그름의
기준이 두 주인의 왕좌에 고정되어 있다.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천재 윤사 교과서]
공리의 원리란 행복을 증진하거나 감소하느냐에 따라 각각의 모든 행위를 승인하거나 부인하는 원리를 뜻한다.
내가 말하는 모든 행위란, 개인의 사적인 모든 행위뿐만 아니라 정부의 모든 정책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천재 윤사 교과서]
128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밀
고급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 하급의 존재보다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아마도 고급의 능력을 가진 자는 그것을 만족시키는 과정에서 더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보다 미천한 삶으로 전락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
스러운 인간으로 사는 것이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
[밀, 『공리주의』, 미래엔 윤사 교과서]
전체적으로 볼 때 인류의 생각과 행동이 지금처럼 놀라울 정도로 이성적인 방향으로 발전해올 수 있었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지적 또는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자신의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토론과 경험에 힘입어 자신의 과오를 고칠 수 있다.
[밀, 『자유론』, 미래엔 윤사 교과서]
129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밀
자유의 기본 영역으로 다음의 셋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양심의 자유, 생각과 감정의 자유, 절대적인
의견과 주장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둘째, 각자의 개성에 맞게 자기 삶을 설계하고 자기 좋은 대로 살아갈
자유를 누려야 한다. 셋째, 어떤 목적의 모임이든 자유롭게 결성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어떤 정부 형태를 가지고 있든 이 세 가지 자유가 원칙적으로 존중되지 않는 사회라면 결코 자유로운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자유를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자유 가운데서도 가장 소중하고 또 유일하게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는 자유이다. 우리의 육체나 정신, 영혼의 건강을 보호하는 최고의 적임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각 개인 자신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게 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누구든지 웬만한 정도의 상식과 경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의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자유에 관한 아주 간단명료한 단 하나의 원리를 천명하고자 한다. 인간 사회에서
누구든(개인이든 집단이든)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될 수 없다. 물리적 또는 도덕적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간섭하는 것도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당사자에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거나 더 행복하게 만든다고, 또는
다른 사람이 볼 때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하거나 옳은 일이라는 이유에서라도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무슨
일을 시키거나 금지시켜서는 안 된다. ……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개인이 당연히
절대적인 자유를 누려야 한다. 자기 자신, 즉 자신의 몸이나 정신에 대해서는 각자가 주권자인 것이다.
[밀, 『자유론』, 미래엔 윤사 교과서]
130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밀
만족한 돼지가 되기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편이 낫다. 만족한 바보이기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낫다. 바보나 돼지가 이러한 주장과 다르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들이 한쪽 측면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과 비교 대상이 되는 인간이나 소크라테스는 양쪽 측면 모두를 잘 알고 있다.
[밀, 『공리주의』, 천재 윤사 교과서]
자유의 기본 영역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모든 주제에 대해 양심의 자유, 생각과
감정의 자유, 의견과 주장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둘째, 자신의 기호를 즐기고 희망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를
지녀야 한다. 셋째,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어떤 목적의 모임이든 자유롭게 결성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정부 형태든 이 세 가지 자유가 존중되지 않는다면 결코 자유로운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밀, 『자유론』, 천재 윤사 교과서]
131
현자의 돌 임용고시 자료
윤리와 사상 교과서 모음 밀
행위는 행복을 증진하는 경향성에 비례하여 옳고, 행복의 역을 산출하는 경향성에 비례하여 그르다. ‘행복’은
쾌락을 그리고 고통의 부재를 의미한다. ‘불행’은 고통을 그리고 행복의 상실을 의미한다.
[밀, 『공리주의』, 교학사 윤사 교과서]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고, 만족스런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
[밀, 『공리주의』, 교학사 윤사 교과서]
자유가 있는 사회는 개인의 행복과 참다운 진리가 있으며, 더불어 인류도 성장한다.
[밀, 교학사 윤사 교과서]
개인은 자신의 육체와 정신의 주관자로서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밀, 『자유론』, 교학사 윤사 교과서]
132